뉴욕 후러싱은 120여 개의 다민족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48%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인지 동네 사람들이 이번 주말이 Memorial Day인데도 연휴라는 것 말고는 나라를 위해 생명 바친 군인들을 기념하는 현충일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이 국경일을 강제로 지키게 하는 나라가 아니므로 이런 자유는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자신이 사는 나라 일에 무관심한 것에 대해 왠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제가 애틀란타에서 목회했던 Duluth라는 동네는 현충일에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군인들에 대한 예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었습니다. 교회 가는 길 동네 입구에 이날이 가까이 오면 변함없이 작은 하얀 십자가들이 즐비하게 세워지고, 거기에는 군인들의 이름과 어느 전쟁에서 전사했는지가 적혀졌으며 성조기가 십자가마다 꽂혀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을 지날 때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이름은 한사람씩 부르면서 기도했습니다.
리비아 대사를 지냈던 김성엽 애틀란타 총영사는 당시 제가 섬기던 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한번은 총영사 관저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만찬 후에 코리언 어메리칸의 우수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한쪽에서는 미국에 살고있으니 영어를 우수하게 잘해야 하고 미국주류사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고, 다른 한쪽은 코리언 어메리칸이면 한국어를 잘해야 하고 한인의 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꼭 서로 반대되는 말은 아니었지만 강조하는 내용이 달랐습니다. 그런 와중에 김성엽 총영사께서는 “우수하면 무엇하나요? 자기의 뿌리도 모르고 동족도 모른체 하면서 성공하면 무엇합니까?”라고 큰소리로 한마디 하셨습니다. 외교관으로 오랜세월 동안 많은 해외동포들을 만나면서 자기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빠져있는 이기적인 삶의 모습에 맺혔던 답답함이 터져나왔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에도 동의를 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살아가는 나라를 귀하게 여기는 시민과 국민으로 자랑스럽게 책임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금도 제대로 내고 미국이 하나님 뜻에 따라 쓰임받는 나라가 되도록 투표도 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참여하는 책임있는 시민정신이 요구됩니다. 미국에 살면서 책임있는 시민으로 애국해야 합니다.
애국이라는 것이 백인민족주의자들이 외치는 그런 뒤틀린 악한 애국이 되면 안 됩니다. 미국이 얼마나 군사적으로 강한 나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약한 나라 함부로 침공하는 제국주의적 악한 행위는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못된 애국이 아니라 세상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엄청나게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긍정적인 면에서 특별한 나라에게 주어진 ‘미국 특별주의’ (American exceptionalism)를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요구할 것이요”(누가 12:48)가 바로 그것입니다. 선하고 의로운 일에 쓰임 받는 사명으로서가 아니라, 약한 나라 함부로 침략하고 세계평화와 지구환경을 마음대로 파괴하는 이기적 특권을 누린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미국이 하나님 나라에 쓰임받도록 하는 애국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동안 미국이 다른 나라에 가서 전쟁 함부로 일으키는 것 반대하는 반전데모를 열심히 참가했던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군인들을 무시하거나 미워하진 않았습니다. 몇 년전에 메모리얼데이 행사에서 2차대전으로 시작해서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의 참전용사들이 앞으로 나오고 참석자들이 그들을 위해 기립박수를 보내는 중에, 주최측이 저에게 그 노병들을 위해 악수를 하고 축하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일이 악수를 하며 “나라를 지켜줘서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했더니, 그분들은 저에게 “It was an honor to serve.”(나라를 위해 쓰임 받았음을 영광으로 여깁니다.)라고 오히려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반전데모 열심히하는 한인목사가 미국인 노병들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그분들은 나라가 필요할때 쓰임받아서 영광이라고 엄숙하게 인사를 나누었던 그 순간이 저에게는 참으로 묘하고 경건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나름대로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워싱턴에 다녔습니다. 80년대에는 군사독재 반대하는 데모를 주로했고 90년대 이후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국무성도 국회도 방문하는 로비활동에 참여하고 그랬습니다. 지금도 미국 정책이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혈기왕성했던 때라 하겠지만 오래전 제1차 이라크전쟁이 시작된 바로 다음 날 연방청사 앞에서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든 폭탄에 죽어간 이라크 군인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다!”라는 팻말을 들고 일인시위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 전쟁이 아주 잘못된 정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언제인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을 때, 사람들이 이라크에 가는 군인들의 대열을 보며 박수를 치기에 저도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힘차게 격려의 박수를 쳐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현충일 연휴 잘 쉬고 신나게 즐기시기 빕니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생명바친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을 잃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