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권운동에 앞장섰고 훗날 세계개혁교회연맹 회장을 오래 역임했던 알렌 부섹이 쓴 ‘Farewell to Innocence’(순진이여 안녕)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흑인들이 당하는 인종차별에 침묵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권운동에 참여하는 기독교지도자들에게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말고 영적인 일에만 관심 가지라고 비판하는 백인기독교인들에게 그런 순진한척 하는 위선적인 신앙을 버리라고 외쳤습니다. 1960년대 마틴 루터 킹목사가 인권운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것도 강도 만난 이웃의 고통에 무관심하면서 자기들은 순수하게 예수만 잘 믿는 것처럼 위선하는 백인 기독교 지도자들의 비판이었습니다.
기득권이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사회구조와 가치관에서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울함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득권자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사회 철학과 사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신앙적으로 정당화시켜주는 종교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구약은 과부와 고아,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말하고 신약에서는 지극히 작은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시는 예수님이 분명하게 제시됩니다. 어제 새벽기도 말씀에도 보면 시 12:5에서 하나님이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을 더 이상 볼수 없어 일어나겠노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이민자보호교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것이 ‘불법체류자’들은 나라의 법을 어긴 사람들인데 그들을 도와주면 같은 불법자들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몰이해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DACA(서류미비 청소년)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나이에 미국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현 행정부가 80만이 넘는 이 젊은이들에게 그동안 주었던 권리를 박탈하려고 합니다. 이 가운데 우리 한인 젊은이들이 2만명이 넘습니다. 우리교회에도 많습니다. 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려했던 문제가 합법 이민자들의 숫자를 50%로 줄일 것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난주간 사실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정책 배경에는 ‘백인민족주의’(white nationalism)가 원하는 소수민족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억제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정책이 어떻게 가능할까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백인민족주의’정책은 앞으로 우리 자녀들 후손들이 살아갈 미국이 더욱 인종차별적인 나라가 되는 제도와 가치관을 정당화 시켜줄 것입니다. ‘서류미비자’들에 대한 탄압에 그치지 않고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가로막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한인들 가운데도 자기들이 조금 살만한 위치에 있는 것 같으면 소수와 약자의 입장보다는 다수와 강자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하려고 하는 위험한 착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동포사회에만 국한되지를 않습니다. 지난주간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고조된 전쟁 가능성 이야기가 나오는 중 현 미국 대통령이 수천명이 죽어도 미국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데 뭐 걱정이냐는 식의 발언을 했습니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란 북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한에도 사람들이 살고있습니다. 트럼프대통령에게는 자기와 상관없는 땅과 사람이 죽어가는 일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내 가족 내 동족이 살아 숨쉬는 땅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예수 잘 믿는다고 착각하면서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문제에 눈과 마음을 가리고 있는 사람들 진짜 살아 계신 예수님 믿는다면 고통당하는 이웃의 아픔에 무관심한 무지하고 잔인한 순진을 이제는 안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