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내가 “당신 왜 요즘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반항해?”합니다. 내가 환갑의 나이에 그런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기가 막히지만 만약 그 말씀에 일리가 있다면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갱년기일 수 있습니다. 인생 후반전을 위한 삶의 재정비, 자동차로 말하면 튠업이 필요한 때인지 모릅니다. 킴벌리 커버거가 쓴 이런 시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알고있는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것에 더 귀를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다른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서는 덜 걱정 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걸 두려워 하지 않았으리라. 더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뉬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것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 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은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10여년전 당시 연합감리교 한인교회 중 크다는 교회 목회자들의 모임에 참석을 한적이 있습니다. 후러싱교회 김중언목사님, 와싱톤교회 조영진목사님, 디트로이트교회 이훈경목사님등 선배목사님들이 모였던 것 같습니다. 나도 이제는 선배들에게 인정받는 목사가 되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모임 중에 제가 “이제 목회가 무엇인지 좀 알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했더니 조영진목사님이 웃으시면서 “목회가 뭔지 안다고 하는 것보니 아직 멀었다.”하셨던 일이 생각납니다. 목회 좋은 선배들이 계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난 목회를 돌이켜 볼때 지금도 뼈 아프게 깨닫는 것이 좀 더 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특별히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판단과 분별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늦게 깨닫고 또 깨닫는 것입니다. 단호하게 판단했어야 할때 주저주저하다가 교회에 어려움을 준 일, 냉철한 객관성을 적용했어야 했는데 사람을 믿었다가 문제를 크게 만든일, 교인들은 내가 뭔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나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무능력했던 일…돌이켜 보면 당시에는 내가 옳다고 여겼지만 교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에 피해를 준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지금 내가 알고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계속 후회와 부끄러움의 반복일 것입니다. 누가 농담으로 말하면서 젊어서 목회할때는 모르는 것도 열심히 설교를 하고 나이가 좀 먹으면 아는 것만 설교를 하고 더 많이 먹으면 기억나는 것만 설교를 하게 된다 합니다. 깨닫게 되면 세상 떠날 때 다된 것이라 누군가 말했는데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요즘 여호수아와 사사기 새벽기도 설교를 통해 생각하는 것이지만 제가 겪는 것이 갱년기이건 뭐건 거룩한 싸움을 재정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윗이 큰 싸움을 앞두고 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고 동지들을 규합했고 더 큰 승리의 확신의 노래를 불렀던 것 처럼 교회도 거룩한 싸움의 과제를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나중에 큰 후회 많이 안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두려운 것은 어려서는 부모 말 안듣고 커서는 선생님 말 안듣고 결혼해서는 아내 말 잘 안들었는데 천국가서 하나님 말씀도 잘 안듣다 왔다고 책망듣는 것입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일이 참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