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년여 매년 한번씩은 내가 목회하는 교회를 찾아주는 귀한 분이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연합감리교를 책임지는 에드워드 헤가이 감독입니다. 유라시아 연회는 러시아, 중앙아시아 그리고 북유럽까지 방대한 지역입니다. 여러 국가와 언어권을 한 감독이 감당한다는 것은 참으로 벅찬 일입니다. 다행인 것은 헤가이 감독은 42살에 감독이 된 최연소 감독인데다 러시아군대 장교출신인지라 젊고 건강합니다. 그는 1937년 겨울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한 연해주 조선인의 후예 고려인 3세입니다. 헤가이라는 성은 ‘허’씨라는 뜻입니다.
헤가이 감독 이전에는 유럽인들만이 감독으로 선출되었는데 러시아인으로서는 그가 최초로 유라시아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스탈린 시절 러시아가 핍박했던 한민족의 후손입니다. 저는 그에게 항상 “그대는 우리 디아스포라 민족의 요셉입니다”라고 말해줍니다. 일제 강점기에 스탈린은 일본군대를 연해주에서 몰아내주면 조선사람들을 위한 자치운영 주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독립군이 일본군대를 몰아냈음에도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1937년 겨울 10만의 조선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5만명이 굶거나 얼어죽었는데 헤가이 감독의 어머니는 당시 강제이주 기차에서 태어났습니다.
헤가이감독에게 안부를 물으니 요즘 러시아는 서방세계에 대한 불신이 커져서 러시아정교회가 아닌 개신교에 대해 불신이 많은데 특별히 연합감리교는 미국 앞잡이 종교라고 여겨서 참으로 어려운 때라고 합니다. 방대한 지역에 교회들이 흩어져 있고 재정이 어려우니 감리사들을 세워놓았어도 여행비 마련조차 어려운 상황인지라 진퇴양난인 것 같습니다. 같은 연합감리교 감독이라고 하지만 헤가이감독이 감당해야 하는 사역은 내가 보기에 다른 감독들에 비해 너무 버겁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를 만나면 복잡한 교단 이야기 잘 안합니다. 공항에서 오자마자 목욕탕 가서 쉬라고 했습니다. 저녁에는 얼큰한 국밥 대접했습니다. 작년에도 감독회의를 마치고 모스코바 가는 길에 뉴욕을 경유하는데 공항에서 나왔다가 가겠다고 하기에 중요한 선교지원을 부탁하러 오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일주일동안 미국음식 먹었더니 어머니가 해주시던 얼큰한 한국음식 먹고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런겁니다.
헤가이 감독은 제가 유라시아 선교 후원회장인데도 재정 어려움을 말하지 않습니다. 러시아인으로서 만이 아니라 카작스탄에서 자란 고려인의 자존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인가 제가 “당신이 감독이니 나에게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라”고 했더니 자기는 그리 못한다고 합니다. 그의 말인즉슨 “나는 어려서 아버지나 삼촌이 말하면 순종하며 살아왔습니다. 김목사님은 나의 삼촌과 같은 분이니 목사님이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나는 편해요”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블라디보스톡에 평화기도센타를 세우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남한과 북한이 가장 가까운 땅이 그곳이기에 한반도 통일의 미래를 준비하는 목적이었습니다. 우리교회 교인 한분이 10만불을 그 목적으로 헌금하셨습니다. 그런데 한국 광림교회에서 4억원을 헌금하고 독자적으로 평화기도센타를 세우기로 하여 미국연합감리교회는 손을 뗀 상황입니다. 이번에 어려워진 선교현실에서 다시금 유라시아 연합감리교회 선교비전을 의논하고자 합니다.
오늘은 중고등부와 영어권예배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 젊은이들이 헤가이감독을 만나고 말씀듣기를 원합니다. 고난의 민족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세워주신 요셉과 같은 그를 우리 젊은이들이 만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도 나를 삼촌과 같이 여겨주고 변함없는 ‘후원회장’으로 고마워하는 유라시아 UMC 감독님 우리교회 방문이 자랑스럽고 감사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