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우리는 그 안에 담겨있는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찾게됩니다. 춥고 배고픈 것도 나라 밖에서 당하는 것은 더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강제이주 80년 행사에 참여하면서 그 생각을 많이 하게됩니다. 2년전 봄에 카작스탄 우스토브 허허벌판에 자리잡은 고려인 묘지를 방문해 기도했었습니다. 강제이주 고려인들이 묻힌 땅입니다. 이번에는 그분들의 강제이주가 시작된 라스돌라야 기차역을 찾아가 기도했습니다. 소련의 스탈린은 1934년 유태인 자치주를 연해주에 세우도록 허락하고는 고려인들에게 일본군대를 물리쳐 주는 조건으로 고려인 자치주를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어기고 고려인들이 조선 땅 가까운 곳에 있으면 소련의 안보에 위협이 되니 중앙아시아 개발을 명분으로 1937년 9월부터 3개월간 고려인 강제이주를 명령한 것입니다. 그렇게 추운 겨울 화물차에서 몇달넘도록 긴긴 시간 서서히 추위와 배고픔에 죽어간 고려인 고난의 역사입니다.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앞두고 동지11명과 함께 왼쪽 넷째 손가락 윗부분을 잘라 혈서로 ‘대한독립’이라 쓴 단지동맹(斷指同盟)의 역사현장도 방문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톡은 안중근의사만이 아니라 초대 임시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선생등 독립 무장활동이 활발하던 땅입니다. 이번에 알게된 것은 블라디보스톡 중심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전도사와 목사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동휘선생도 전도사였고 블라디보스톡 감옥에서 순교하신 김영학목사님 같은분도 당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시대적 사명이 독립운동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목회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역에서 독립군 토벌대 일본군 장교였던 다카키 마사오가 훗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나눈 발표자는 대한민국 역사왜곡의 중심에 친일파들이 많은 이유와 그들이 지금도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습니다. 역사를 바르게 배워야 하는 것은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라고도 강조했습니다.

1989년에 와서야 소비에트 선언으로 스탈린의 그 악행을 불법적인 범죄행위로 소련정부가 인정합니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민들레처럼 질긴지 그 고난의 역사를 이기고 카작스탄을 위시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일대에서 50만 고려인들이 살고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인 후손 가운데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전체 UMC 감독 에드워드 헤가이을 위시한 많은 지도자들이 쓰임받고 있습니다.

수년전 중앙아시아선교협의회 모임때 헤가이 감독이 중요한 발언을 했었습니다. “미국에서 오는 사람들에 대해 놀라는 것이 있다. 모든 일에 정답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언행이다. 러시아 교회에 대한 대화를 나누어도 우리들보다도 더 러시아를 잘 아는 것처럼 말을 한다. 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지를 않는지 모르겠다. 선교를 하려면 선교지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것부터 배우기 바란다.”

첫날 두만강에 가서 통일기원 기도회를 가지려던 일정이 핵무기 문제로 러시아가 UN Sanction에 서명하는 바람에 북한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되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저는 통일이 어려운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서로 상대방에 대해 확실한 답들이 많아서 문제입니다. 그 확신이란 서로 원수만드는 확신입니다.

한반도 평화통일 세미나 마지막 발제에서 저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예수의 사랑이 답이라고 너무도 단순하고 당연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원수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이해하기 어려운 예수님 그 말씀안에 영원히 사는 진리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