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지만 때로 감사는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오늘로 꼭 46년 전 추수감사주일 아버지는 설교하시다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그날 하나님 부름받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 욕하고 저주했던 때가 있었지만 목사된지 40년이 넘었고 저는 오늘 ‘감사를 아는 사람이 되라’ 제목으로 설교를 합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많이 못생겨서 어머니 친구들이 어머니에게 “네 아들이니 억지로 이쁘다.”며 놀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라며 생긴 것이 진화해서 고등학생 때는 저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들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자란 시절은 나라 전체가 가난했기에 밥공기 가득 하얀 쌀밥에 김이 모락 모락 오르는 꿈을 꾸는 날이면 행복했었습니다. 평생 먹는 것 불평한 적이 없고 지금도 밥 먹는 시간이 언제나 행복합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었어도 꿈쩍하지 않던 딸이 어느 날 좋아하는 사내아이 만나 시집가더니 아이를 낳아 제가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주중에는 탁아소를 보내기에 아플 때나 우리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니 한살이 지나 주일학교 보낸다고 주일이면 여기에 옵니다. 손자가 제가 목회하는 주일학교 다닌다는 것 생각만 해도 좋습니다.
20-30대 목회하면서 선배어른들에게 참 많이 야단맞고 구박 당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오래지나니 미운정도 고운정 못지않게 그리움입니다. 10여년 전 서부지역 은퇴목사회 회장이 전화를 하셔서 “김목사 언제 은퇴하니?” 하시기에 이유를 여쭈었더니 “오늘 은퇴목사회 모임에서 김목사 은퇴하면 여기 오라해서 총무시키자고 하더라.”하더군요. 제가 총무하면 은퇴목사회가 재미날 것 같다고 만장일치였다고 합니다. 옛날 어른들 만나면 재미있고 좋은 것 보니 저도 나이가 이제 많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목회하면서 목회 잘 못한다고 당한 서러움이 많았기에 교인이 많거나 적거나 연연하지 않고 그냥 하나님이 나를 아직도 쓸모있게 여겨주시는 것 그 자체가 감사합니다. 시카고에서 교회 개척하기 전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학사주점’에 6개월간 찾아가서 청년들을 만나 전도했습니다. 전도라고 하지만 그냥 술주정 들어주고 기죽은 아이들 어깨 두드려주고 그랬습니다. 교회를 시작하니 그 친구들 예배드리러 오니 동네목사들에게 ‘담배피는 교회, 술마시는 교회’ 별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사회정의, 민주화 통일에 관심가지는 목회하면서 주로 빨간색과 관계된 비난을 감수해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일찍부터 각양각색 비난, 공격과 모함 많이 받아서 그런지 왠만한 소리나 파장에 쉽게 동요하지를 않습니다. 더군다나 보청기를 끼고 사니 정말 잘 들리지도 않습니다. 요즘 이것도 하나님 은혜라 여깁니다.
참 많은 것 보아야 했습니다. 갱단에게 살해당한 아들 장례를 치르고 무너져있는 부모 끌어안고 울고는 바로 달려가 천하 밝은 얼굴과 목소리로 결혼식 주례를 하고 나니 그 모순이 감당이 안되어 며칠 끙끙 앓아야 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기적과 같이 사람이 살아나는 일들, 믿음으로 이루는 인간승리 큰 은혜를 보기도 하지만 못나고 못된 인간들의 악한 짓거리도 많이 견뎌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 뜻을 깨닫게 되고 어떤 아픔도 슬픔도 다 내 영성 저수지에 담긴 하나님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 알아 감사할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몇 달 땅바닥에 내려와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 시간을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목회 말년 내게 꼭 필요한 광야의 시간이었고, 이삭의 ‘르호봇의 노래’이고, 중년에 이른 야곱의 ‘벧엘의 회복’이라 여겨져 감사가 큽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이 되면서 교회 여기저기 드러나는 치유와 회복 그리고 부흥의 모습에 감사 또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