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7년 전, 기미년 3월 1일, 일제 만행에 항거하는 학생들, 종교 지도자들, 평범한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들은 총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들었습니다. 오늘 이 세상,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3·1운동은 역사를 바꾸는 시작은 무기가 아니라 신앙 양심이라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민족 대표 33인 중 16명(감리교 9명, 장로교 7명)이 기독교인 이었습니다. 3·1운동은 진짜 신앙은 역사 앞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 오늘 우리가 하는 작은 정의의 실천, 이웃 사랑, 공적 증언은 당장 세상을 바꾸지 못할지라도 하나님 구원 역사의 씨앗입니다.

나치 독일, 국가 권력이 조직적으로 무고한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그 나라 법이 이 만행을 합법화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국교였던 루터 교회가 침묵하고 동조했습니다. 폴란드의 가톨릭교회도 그랬습니다. 나중에 나치의 만행을 알게 되었지만, 많은 세계 개신교 교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죽였으니 하나님 심판 받은 것이라고 히틀러의 만행을 성경을 인용해서 정당화했습니다.

며칠 전에 제 아이들에게 실제 역사를 다룬 ’Sweden Connection’이라는 영화를 추천했습니다. 스웨덴 정부에서 이민 정책과 외교 행정 일을 보던 사람들의 노력으로 10만 명의 유대인들이 나치 독일을 피해 스웨덴에 오는 비자를 받게 되어 살 수 있게 됩니다. 그 ‘유대인 구출 작전’을 주도한 Raoul Wallenberg는 스웨덴의 “행정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정 하나, 도장 하나, 문서 한 장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임 받았습니다. 그 시대 유대인들에게 스웨덴으로 가는 비자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그러나 질문은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 일하고 계셨는가?”

지난 2월 25일, 워싱턴 D.C.에서는 약 2,000여 명의 크리스천들이 모였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서 저도 뉴욕의 젊은 목사들과 함께 ’이민 정의를 위한 공적 증언’(Faithful Resistance: A Public Witness for Immigration Justice) 집회에 다녀왔습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국회의사당까지 함께 걸어갔습니다. 행진하며 외쳤습니다. “이민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것이 복음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시민을 공포에 빠지게 하는 정책에 동참하지 않겠다.” “우리는 나그네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흐름에 침묵하지 않겠다.” “우리는 복음의 이름으로 오직 사랑을 증언하겠다.”

그 집회를 보도한 기사 마지막 부분에서 제가 한 말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이민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는 정책은 분명히 복음의 정신과 어긋난다. 국가는 질서를 세울 수 있지만, 교회는 사랑하기를 멈출 수 없다. 오늘의 교회는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배제가 아니라 환대로, 분열이 아니라 정의와 자비로 응답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글쓴이 Erik Alsgaard, 2월 26일 자 연합감리교뉴스)
우리는 거대한 역사를 바꾸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정을 보호할 수는 있습니다. 한 사람을 환대할 수는 있습니다. 두려움 대신 용기를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그 선택이 모이면 하나님의 역사가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 깨어 있음은 악한 세상 역사에 동조하거나 침묵하거나 공포에 떠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정의로, 환대로, 용기로 그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