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주일 강단 활짝 피어난 꽃 사이에 지난 성도추모주일에 놓였던,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버려져야 했던, 국화 몇 개를 잘 살려 함께 놓은 것이 보기가 좋습니다. 하나님이 언약궤에 깨진 십계명 돌판을 넣게 하신 이유를 어떤 랍비는 인간의 깨어짐조차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라 해석한 말이 생각납니다.
저는 옷이나 양말 고쳐 입는 것 좋아합니다. 학창 시절 가장 멋있는 옷이 팔 뒤꿈치에 가죽이나 천을 붙여 입는 자켓이었습니다. 1981년 1월 장가갈 때 처가집에서 받은 유일한 선물이 장모님이 세탁소에서 손님이 찾아가지 않은 양복 고쳐서 주신 것입니다. 오랫동안 잘 입었습니다. 결혼한다고 $500짜리 중고차를 샀는데 히터가 나오지 않는 차였습니다. 나는 학생 때 부모가 준 돈으로 스포츠카 타고 다니는 아이들 부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그 친구들은 나같은 똥차 타는 아이들 우습게 여겼을지 모르지만 나는 인생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여겼습니다.
어제 새벽 드디어 사택 뜨거운 물이 나왔습니다. 새벽에 머리를 감으려고 물을 트니 따듯한 물이 안 나오는 것 같아 그냥 찬 물에 하려는 데 서서히 물이 따듯해졌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지난주 교회 관리 전반에 걸친 개선점을 논의하다가 ‘환경위원회’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교회의 신앙 척도는 쓰레기와 반비례한다고 여깁니다. 제일 먼저 큰 쓰레기통을 없애려고 합니다. 그것이 있으니 함부로 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팽배합니다. 무엇보다 각 부서에서 쓰레기 만드는 것도 줄이지만 버리는 것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재활용 잘 분리해서 정해 놓은 곳에 가져다 놓는 것 까지 해야 할 것입니다.
내년 창립 50주년 희년을 맞이하면서도 쓰레기 많이 나오는 행사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실제적으로 책임 있게 사랑하는 문화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옛날 시카고에서 목회할 때 주일 아침에 교육부 전도사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린아이가 교회에서 간식으로 주는 빵을 부스러기로 만들어 일부러 카펫에 흘리는 것을 보고 전도사가 그러면 안된다고 했더니 아이 엄마가 “괜찮아. 쓰레기 치는 사람이 치울 거야” 하더랍니다.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 바로 그 전도사였습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교회가 내 교회라고 여기면 먼저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 몸과 마음으로 사랑할 것입니다.
제가 40대 초기 목회할 때 교회가 부흥하면서 어느 날 놀란 것이 나는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권리의식’(entitlement mentality)이 생긴 것입니다. 모임에 가도 상석에 앉아야 한다고 여겼고 비행기를 타면 업그레이드 되기를 바랬습니다. 바보짓이었습니다. 그거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목회하면서 단 한 번도 사람이 많이 모이거나 적게 모이거나 숫자에 대해 거론한 적이 없습니다. 설교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한 명이면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후러싱제일교회 처음에 와서 실수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내가 크고 좋은 교회에서 망가진 교회 왔으니 교인들이 나를 존경하고 박수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려울 때 교회를 지켜낸 교인들을 내가 존경하고 박수 쳐야 했습니다. 나의 못남으로 인해 상처받은 교인들에게 많이 죄송합니다.
그 어느 것도 원래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주신 것입니다. 권리 주장 할 것 없습니다. 모두 오직 하나님 은혜일 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감사 또 감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