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산불이 새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조속히 진압되기를 기도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여러모로 어수선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가 되면서 신분 문제가 있는 분들이 많이 두려워하는 가운데 교인 몇 분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교회가 어떻게라도 힘과 소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마다 남이 모르는 아픔이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사람을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누기 전에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계속 깨닫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려운 일이 있는 분을 위로한다고 대화를 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상상도 못 한 더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물으니, “목사님, 제 아내가 이렇게 어려울 때는 더 열심히 교회 일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하며 환하게 웃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시카고에서 목회할 때, 예배 시간에 늘 인상을 쓰고 앉아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리 불만이 많으면 다른 교회를 가지, 매주일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하면서 그러는지 신기했습니다. 저는 30대 초반이고, 집사님은 50대였습니다. 어느 날 속회가 그 집사님 댁에서 모였는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저 때문에 힘드시죠?”
“목사님, 어머니가 치매가 있으셔서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가서 돌보는데, 주일 아침은 제가 책임입니다. 우리 가족을 믿음으로 지켜 내신 어머니가 치매가 오니 상상하기 어려운 언행을 하세요. 어머니를 뵙고 예배를 드리는데 제가 제 정신이 아닐 때가 많아요. 목사님에게 불만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에요. 그런데 그렇게라도 예배드리지 않으면 제가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 집사님이 왜 그러는지 한 번도 묻지 않고, 다른 교회를 가기를 바랐던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는 물론,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르면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정이나 교회에서 우리의 말 한마디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시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한마디’에 문득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누군가의 ‘한마디’를 버팀목으로 일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한마디 한마디의 말(語)에 사랑을.” (다카하시 아유무)
제가 오는 주간, 리치먼드 버지니아에 있는 유니언 신학교에서 열리는 ‘고 이승만 목사 10주기 기념 심포지엄’에서 설교를 합니다. 10년 전, 목사님께서 장례는 제가 맡아 주기를 바란다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연합장로교회 전체 교단 총회장을 지내시고, 미국교회협의회 회장은 물론 당대 최고의 기독교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셨던 어른의 뜻에 따라 집례는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연합장로교단 총회장을 지낸 목사님이 하셨고, 제가 설교와 축도를 맡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고 이승운 목사님의 사촌 형님이십니다. 평양에서 목회하셨던 아버지가 공산당에게 순교당하셨습니다. 남한으로 내려와 해병대에 지원해 참전하셨습니다. 1960년대에는 미국에 와서 인권운동에 참여하셨고, 1980년대에는 연합장로교단 중동지역 선교총무로 중동 평화를 위해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미국교회협의회 회장이 되시어 미국 교단 대표들을 이끌고 평양에 가셨고, 평생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요즘 세상이 옛 선배 어른들을 기억하는 일에 인색하고 소홀한데, ‘고 이승만 목사님 10주기 기념 심포지엄’을 여는 유니언 신학교가 참 감사합니다. 이 목사님은 어렵고 치열한 인생을 사셨지만 언제나 자상하셨고, 특별히 젊은 목사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통일부총리를 지내신 한완상 장로님께서 이 목사님에 대해 이렇게 쓰셨습니다.
“그의 삶과 인품에서 나오는 그윽한 향기는 바로 평화와 관용의 향기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화해꾼, 이승만 목사』 박용진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