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미국의 현충일(Memorial Day)입니다. 순국한 참전용사들을 추모하는 날입니다. 애틀란타에서 목회를 할 때는 자주 현충일 행사 기도를 부탁 받았습니다. 남부 문화가 보수적 애국심이 강해서 교회들도 메모리얼 주말 주일에는 도로변에서 부터 예배당까지 작은 성조기를 땅에 많이 꽂아 놓습니다. 집에서 교회 가는 길에 보면 세계 2차 대전부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순국자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하얀색 십자가가 도로변에 놓여있습니다. 항상 Korean War라고 새겨진 십자가를 지날 때는 기도를 했습니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내 조국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전해서 생명을 잃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초청해서 교회에서 식사도 대접하고 한국정부가 그분들에게 주는 메달도 전달해 드리는 행사를 여러 번 했습니다. 걸음도 편치 않은 노병들이 한 분씩 지나갈 때 목에 메달을 걸어주면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면 그분들은 모두 “초청해 줘서 감사합니다. 제가 당신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라고 정중히 답례를 했습니다.

전쟁 반대 시위에 많이 참여했습니다. 이라크전쟁이 시작되고는 시카고 연방청사 앞에 가서 일인시위를 했습니다.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든 폭탄에 죽어간 15만 이라크 군인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동양인이 홀로 성직자 옷을 입고 시위를 하는 꼴에 기분 나빠서 “네 나라로 돌아가라!” 소리 지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위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기마경찰들이 내 시위가 끝날 때까지 내 안전을 보호해주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아프카니스탄 파병 때도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목회하는 동네의 메모리얼데이 행사에 불려가서 기도할 때는 순국선열들에 대한 기도는 물론 파병 나간 군인들 그리고 경찰과 소방대원들 포함 모두 보호하고 지켜달라는 기도를 간절히 했습니다. 기도하고 나면 파병 나간 자녀를 둔 부모들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들을 포옹해주며 “나라를 위해 파병한 자녀를 둔 부모인 당신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인종차별적인 남부 문화가 있는 동네이지만 자기 자녀들을 위해 기도한 나를 대할 때 그들은 언제나 간절한 마음을 가진 가난한 심령일 뿐이었습니다. 전쟁은 정책을 결정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합니다. 파병된 군인들은 나라의 부름에 순종하고 간 것입니다. 나라의 정책은 반대를 해도 파병된 군인들의 안녕을 위해서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 아버지는 육군 통역장교 6.25참전용사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제가 자랄 때 북한 김일성 욕하는 말보다는 하루 빨리 통일되기만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북의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입니다. 미국교회협의회 회장과 미연합장로교 총회장을 지내신 고 이승만목사님 역시 해병대로 6.25참전용사이셨고 부친께서는 북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목사님은 평생 한반도 통일운동에 헌신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공산당에게 죽임 당하셨는데, 왜 북한 공산당을 미워하지 않고 통일을 원하는지 질문하면 아버지가 설교하실 때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다고 말씀하셨으니 내가 아들로서 해야 하는 것이 원수 사랑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본인의 장례를 감리교목사인 저에게 하도록 유언을 남기셔서 집례는 팔레스타인 출신, 당시 미연합장로교 총회장이 했고 설교와 축도를 제가 했습니다. 이목사님이 그리 유언을 남기신 것은 자신이 생전 보고 싶었던 조국 통일에 대한 마음을 그렇게나마 저에게 부탁하고 싶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기억(remember)은 하나님 백성으로 돌아오는 과정의 시작이었습니다. 노예 400년, 광야 40년, 포로 70년에서 해방, 회복, 축복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구약의 가장 기본 메세지이고, 이를 통해 하나님을 선택한 민족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만찬에 참여함으로 예수님을 기억하게 하심으로 교회가 주님의 몸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지난 몇 년 마음의 숙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46년 전 먼저 떠나신 아버지 묘에 2년 전 어머니를 함께 모셔서 새로 묘비를 해야 하는데, 어떤 말을 묘비명으로 할 것 인지 였습니다. 고민을 오래하다 결국 아버지가 월남 하셔서 평생 쓰신 일기장을 보니 매년 새로운 일기장을 마련하시고는 맨 앞에 ‘Sola fide’(오직 믿음)이라 쓰셨습니다. 그래서 Sola fide Sola gratia로 결정했습니다. 내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과거의 기억이 나와 내 형제들, 그리고 후손들이 오늘과 미래를 살아갈 좌우명이길 바래서입니다.

가정, 교회와 나라 생명 바친 분들을 기억함으로 하나님 은혜를 깊이 생각하는 축복 누리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