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정호

오래전 성만찬이 있는 주일 예배가 끝나고 평상시에도 저에게 교회 문제를 잘 지적하시는 장로님 한분이 “아니 어떻게 성스러운 성만찬을 받는데 조건을 붙일 수 있습니까?”라고 항의를 하셨습니다. 사순절 기간인지라 교회는 빵과 같이 세상을 위해 나누어져야 하니 앞으로 성만찬을 하는 주일 무숙자들을 위해 비누나 치약과 같은 것 하나씩 가지고 와서 ‘사랑 나눔 박스’에 넣자고 제안한 것에 대한 반대의견이셨습니다. 그런데 한말씀을 더하셨습니다. “십일조 내라고 해서 십일조 내고 교회 개척을 위해 전교인 하루 $1내기 운동한다고 하고 사순절 북한 어린이 돕는다고 집에 있는 동전 다 모아가지고 오라고 하는가 했는데 이제는 비누하고 치약까지 교회에 들고 오라니 도대체 교회가 어떻게 되어가는 겁니까?”

저의 의도는 교인들이 참여하는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교인들의 입장에서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교인들을 들들 볶고 쥐어 짠다고 표현하시는 장로님 말씀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장로님은 화를 내시는데 저는 자꾸 웃음이 나왔습니다. 결국 “장로님 잘못했습니다.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사과를 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다른 장로님이 제게 항의를 하셨습니다. “기획위원회에서 좋은 아이디어라고 모두 찬성했는데 어떻게 그 장로님이 항의하신다고 즉석에서 사과를 하고 계획을 무효화 하시나요?” 제 대답은 “장로님,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 말씀이 무엇보다 신앙의 원칙적인 문제를 제기하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였습니다. 또 나중에 부목사 한 사람이 제가 그 장로님에게 완패를 당한 것에 대해 “목사님, 어떻게 그리 쉽게 항복하세요? 그 장로님에게 그리 당하시면 앞으로 계속 밀리실 것입니다.”합니다. 제 대답은“그 장로님을 설득하지 못했으면 다른 다수의 교인들 설득도 못했다는 것이니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였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항상 깨닫는 것은 내 뜻대로 되는 것 꼭 좋은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강하게 이의를 제기할 때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요한 결정 이후 “그 때 장로님들이 제 뜻을 따라 주지 않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라고 항복한 적이 여러번 있습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반대의견이 있어도 제가 단호하게 결단함으로 교회의 어려움을 넘긴 일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 항의하신 장로님 말씀을 듣고 즉시 항복한 배경에는 그 장로님이 가지고 계신 교회 사랑이고 헌신의 믿음을 제가 신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 사랑이 분명하고 상호 신뢰만 있으면 더 바랄 것 없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중요한 것은 성숙한 의견나눔의 과정을 통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요한 웨슬레가 외친 “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에는 자유, 모든 일에 사랑”의 원칙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내 뜻대로가 아니고 주님 뜻대로 되어야 하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