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미국교회에서 목회하는 분이 고민을 말합니다. 연세많은 분들만 있는 교회에 파송을 받았는데 감독의 기대가 자기를 보내면서 고령화된 교회를 젊은이들이 오게하는 교회로 전환시키는 것이라 했다합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다보니 젊은이들이 들어올 수 있는 지역현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인들 평생 교회를 헌신으로 지켜오셨는데 자신들 떠나면 교회 문닫게 될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 합니다. 젊은이들이 오지않는 것에 대해 죄책감과 무기력감에 빠진 교인들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목회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는것인가요?” 합니다. 늙은이 교회를 젊은이 교회로 바꾸어 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목사로 평가받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호소합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장수의 축복을 받아 늙은 것이 죄인가? 젊은이들이 떠나는 동네, 늙도록 교회를 지켜낸 것이 잘못인가? 그리고 최선을 다하다가 늙어 세상떠나 천국가는 교회는 실패한 교회인가?”
요즘 나는 정말 쉬운 목회를 했다는 생각을 많이합니다. 시카고 애틀란타 뉴욕 대도시 한인들 많은 곳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17년 시카고에서 교단지원으로 젊은이들 목회를 했고, 18년동안 목회한 애틀란타는 제가 갈 때 한인인구가 3만명이었는데 떠날때 12만을 넘는 인구증가를 했습니다. 지금 뉴욕에서는 이민1번지 후러싱에서 목회를 하고 교회를 섬기는 헌신도가 높은 교회에서 목회를 합니다. 조건이 좋은 곳에서만 목회했으면서 어려운 현실에서 목회하는 분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만만한 말을 쉽게 한 것, 많이 반성합니다.
한인교회 목회를 처음하는 젊은 목사가 찾아왔습니다. 페북에서 보면 자신있게 설교를 하고 교인들에게 소신 가득한 말을 당당하게 하는 목사입니다. 인사를 하기에 “목회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요즘 교인이 늘었나?”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요. 목사님, 시작할 때 두명이었고 아직도 두명입니다.”합니다. 그러면서 “어떡해야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는건가요?” 묻습니다. 그래서 “교회 부흥시키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라. 행여 교인이 좀 늘면 교만해 질 것이고 그러기 어렵다. 교인이 늘지 않으면 무기력감에 빠질 것이다. 그냥 좋은 설교자되기 위해 설교 열심히 준비하고 기도 열심히 하면서 행복한 목회해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 빈익빈 부익부, 세상 현실보다 더 잔인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목회자 사회 금수저와 흙수저, 골품제도는 말할 것 없고 이미 달리기 시합 출발지점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개척을 하거나 어려운 교회를 부흥시킨다는 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목회자들이 무기력감만이 아니라 죄책감이라는 짐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내 세대만 해도 선배어른들이 씨뿌려 놓은 열매를 잘 먹으면서 보다 쉽게 목회를 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이 목회해야 하는 교회의 현실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후배들에게 목회 잘하라고 충고하고 가르치는 역할을 조심합니다. 얼마 전 부터 내가 할 일은 같이 밥먹고 격려하고 기도해 주는 일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스케쥴상 몸도 마음도 많이 버거웠지만 그냥 내 자리는 지켜야겠다 여겨 참석했던 모임입니다. 그런데 찾아와 자기 이야기를 하는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잘 참석했다 여겼습니다.
밥을 먹는데 옆에 있던 40대후반의 목사가 묻습니다. “목사님은 우리교단의 나아갈 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젯밤 저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목사님에게 가는 길을 묻자는 말이 나와서요.” 제 대답은 “그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먼저 들어야지. 미래의 교회는 나보다 젊은사람들이 살아 나가야 할 것인데 내 생각보다 중요한 것은 그대들 생각이다.”였습니다. 그랬더니 “그래도 목사님은 답이 있으시잖아요.”합니다. 그래서 “정답이 어디있어. 답을 함께 찾아가는 친구들과 동지들이 있으면 되는거지.”라 했습니다.
안치환이 부르던 노래가 입속에서 맴돕니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투쟁 속에 동지 모아/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동지의 손 맞잡고/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어기여차 넘어 주고/사나운 파도 바다라면/어기여차 건너 주자/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서로 일으켜주고/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