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부터 제 226차 뉴욕연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계속 나오는 말이 교회에 노인들이 많고 젊은이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이 성령강림주일인데 성령이 임하면 말세에 어린이들이 예언을 하고 청년들이 환상을 보고 늙은이가 꿈을 꾼다고 합니다.(사도행전 2:17) 예언은 점을 치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은행에 돈이 예금되어 있다는 뜻으로 하나님 말씀의 저수지에서 물을 마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어린이들이 말씀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형통함을 누리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청년들이 환상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미래를 오늘 믿음으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천하 부러울 것 없이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는 현실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 가운데 가장 비현실적인 것이 늙은이가 꿈을 꾼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경험으로 보아서는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성령께서는 지금도 살아서 각 세대에 맞는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일하고 계시기에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늙은이는 과거 회상과 소외감에 빠지지 않고 현재 사명 그리고 미래 비전으로 삽니다. 은퇴 후 잘 쉬는 것 중요하지만 기도로 중보하고 시간이 넉넉하니 오히려 할 수 있는 사역이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늙어서 개인적 소망을 이루는 꿈은 시들 수 있지만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일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감동과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갈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여호수아 14:12) 외친 것과 같습니다.
늙은이들이 꿈을 꿀 수 있으려면, 그 꿈을 들어줄 젊은 세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일 어렵습니다. 젊은이들이 어른들의 꿈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너무 감사하지만 안되면 노인들 서로가 말하고 들어주고 함께 이루면 됩니다. 남에게 기대하다 실망할 것 없이 스스로 긍정적이고 당당한 자존감을 지켜내면 될 것입니다. 제가 뉴욕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교회에 처음 나온 분이 큰 소리로 “아니 이 교회 노인네들이 왜 이리 많아!” 하기에 제가 “아니 본인도 70 중반이면서 무슨 소릴 그리… ” 했습니다. 노인 스스로가 서로 존중하고 존귀함을 지켜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건강과 장수의 축복 주셔서 오래 살면서 교회 잘 지켜 주시는 어른들에게 감사하지는 못하고 무례한 소리 함부로 하는 것 아닙니다.
물론 세대를 이어 자녀들이 교회를 잘 나오고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이 가득하게 모여 신앙생활 잘하면서 노인들 공경하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바람일 수는 있어도 노인층이 많다고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벌써 오래전이지만 서유석이 부른 노래 가사 참 좋습니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그런데 중요한 전제는 늙은이가 꿈을 꾸어야 진정 어린이가 예언하고 청년들이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늙은이들의 기도와 사랑을 받고 어린이들이 자라나고 늙은이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꿈을 꾸는 것을 보고 젊은이들이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늙은이들 얼굴에 심통이 가득하고 입만 열면 부정적인 말 늘어놓고 젊은이들에게 무례하고 불편하게 하면 늙은이가 젊은이 몰아내는 교회 될 것입니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노인들이 젊은이들이 모임에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노인들을 스스로 비하하는 말을 하기에 나도 앞으로 오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노인들이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하나님의 꿈으로 충만해야 젊은이들이 오고 싶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세에 성령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이 뜻하고 행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 같은 그때에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말씀 너무 좋습니다. “저 인간 끝났어!” “저 집안 망했어!” “저 교회 가망 없어!” 하는데 회복되고 살아나고 부흥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