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임연희목사님이 감리사로 있는 롱아일랜드 동지방 목회자 세미나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한 시간 강의 마지막에는 ‘motivational speech’(마음 다지는 이야기)를 하면서 야고보서 말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1:2-4)를 나누었습니다. 교회들이 대부분 어려운 목회현실에 있다고 하기에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부정적인 말들이 들려 올텐데 긍정적인 말을 듣는 습관을 가지지 않으면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듣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목회 현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계획은 순탄한 길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계획은 예측할 수 없는 여러 종류의 함정과 여러 시련의 과정입니다. 내 계획을 빨리 내려놓고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섭리하심에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가을에 들어오니 몸이 움추려지게 되지만, 마음과 영혼이 보다 고요함을 찾게 되어 좋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는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며칠 전에 ‘인간의 삶에 대한 진실’이라는 짧은 글을 선배 목사님께서 올리셨는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경험해 보니 슬픔은 인생이 짧아서가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더라…. 죽음은 삶의 가장 큰 상실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살아있는 동안 우리 안에 소중한 것들이 죽어있는 것이다”.
그 어른께서 인생 중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란 실패를 알고 역경과 고통을 경험하고 아픈 상실의 늪에도 빠져보고 사람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 길을 잃고 대인 기피증에서 허우적 거려도 보고 건강을 잃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마지막 기도도 올려 본 경험의 소유자들이었다… 아름다운 사람은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더라”하셨습니다. 제가 그 어른을 잘 압니다. 80대 중반에 이르셨는데, 오랜동안 거의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더니 얼마 전 부터 인생 간증 짧은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어린시절 친구가 어제 메세지를 보냈왔습니다. 저와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닌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입니다. 시골 의정부 중학교에서 서울 중동고등학교 입학을 세명이 했습니다. 우리 셋은 촌놈이었기에 기죽어 서울로 통학했지만 의정부에서는 서울 통학생이라는 자부심이 컸습니다. 그 가운데 한 친구는 가난을 못 이겨 일찍 떠났고, 어제 소식 받은 친구는 사업 망한 후 10년여 아프다가 떠났다고 합니다. 연락을 준 친구는 우리 가운데 세상적으로 보면 가장 출세했던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탁월하게 언제나 옛 친구들 지켜주고 소식 알려주는 일을 잘했습니다. 나는 그가 정치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야를 떠나 손주보는 재미와 봉사활동과 교회 섬기는 일 그리고 옛 친구들 만나는 행복으로 산다 합니다.
아주 오래전 고향을 찾은 나를 반기는 포천에서 크게 주류업체 사장을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자전거로 막걸리 배달로 시작해서 성공한 것입니다. 친구들 모임에서 술을 많이 마신 그 친구가 벌떡 일어나더니 “정호야 너 미국 그만큼 살았으면 이제 고향에 와서 우리와 같이 살자”합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오면 너희들이 국회의원 시켜줄래?”했더니 그 친구가 큰 소리로 “못할 것 뭐있냐?”하는데 말도 안되는 농담에 동의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30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 목사인 저는 마음 속 깊이 감추었던 세상적인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만 원하면 정치 제대로 할 조건을 다 갖춘 친구가 인생 후반전에 가정과 교회를 위한 일에 집중하겠다는 말을 듣고 무척 고마웠습니다.
늦게 아주 늦게 깨닫는 것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