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제 셀폰 속에 있는 사진 몇 개를 지우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외국에 나갔다 들어올 때 국토안보국에서 셀폰에 있는 내용을 뒤진다는 뉴스 때문입니다. 가자지역 이스라엘의 폭격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사진을 지우려다 내가 이런 비겁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습니다. 별 문제도 아닙니다. 작년에 어느 선교지를 방문하고 입국할 때 양말까지 벗어야 하는 조사를 받으면서 많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컬럼비아대학에 다니는 영주권자 한인 학생은 팔레스타인 민족에게 가혹한 짓을 하는 이스라엘의 만행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추방당할 위기까지 처했는데 시민권을 가진 나이든 목사가 인생 조금 불편해지는 것 걱정되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자국민에 대한 ‘Fear Politics’(두려움의 정치)를 하는 것일까요? 이인협 교수(테네시 주립대학)는 트럼프 제2기 정책을 반 엘리트주의 포퓰리즘,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반이민 인종주의라고 규정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온 이후 추방의 두려움, 경기침체 그리고 관세전쟁으로 기업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예일대학의Bandi Lee 교수는 ‘The Dangerous Case of Donald Trump’(2017)와 ‘The Psychology of Trump Contagion’(2024)라는 책에서 “트럼프의 정신적인 문제가 나라와 개인의 복지에 위협이 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정신적인 문제라는 것은 정치와 사회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바닥에 있는 의식구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경쟁사회에서 밀리는 젊은 세대 가운데 극우주의에서 자기 존재감을 찾으려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반 엘리트주의 포퓰리즘이라는 것은 복잡 다난한 사회 문제를 쉽게 정리하는 음모론을 만들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입니다. 이 선동에 능한 사람들은 민주주의보다 독재를 선호합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며칠 전 파면 당했습니다. 그가 지향한 정치가 바로 트럼프와 같은 반 엘리트주의 포퓰리즘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생각이 다른 편과 타협과 협상이 필요하기에 시간이 걸리고 인내가 필요한 작업인데 이 과정이 어렵고 복잡하니 사람들이 선동에 잘 넘어갑니다. 그리고 선동가들은 불만 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자기편은 하나님 편이고 다른 편은 악이라는 흑백 이론과 음모론을 동원합니다.
왜 미국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을까요? 뉴욕을 위시한 민주당이 시장으로 있는 대도시 대부분 세금이 높고 무숙자와 난민 문제, 범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교단 문제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교단이 지향하는 대부분의 진보적 정의 평화에 관한 입장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거는 슬로건과 선언이 아무리 좋아도 주일에 예배당이 비어 있다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세상 정치만이 아니라 교회에도 보수 반엘리트주의 포퓰리즘이 가능한 것은 진보 엘리트 기득권의 무기력과 무책임에 대한 반감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보수 기득권 세력을 책망하셨지만 로마제국 타도를 원하는 진보주의자들의 기수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천국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고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먹고 마셨고 아픈 사람들 고치셨고 악한 영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모든 기득권 세력들이 야합해서 달려들었고 결국 로마제국에 항거하는 정치범으로 몰려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교회는 세상 정치 선동 어느 쪽이라도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명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변함없이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쓰임 받는 것이고 예수님 십자가 사랑과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 어려운 과제이지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