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조찬선 목사님께서 104세에 하나님 부름을 받으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2년 전에 나성에 모임이 있어 갔다가 원로목사회 점심식사 대접을 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당시 102세이셨던 조목사님이 직접 운전하고 먼 길을 오셨기에 송구스러워 했더니 “김목사 손 한번 잡아주러 왔어요” 하셨습니다. 조화를 보내려고 밸리연합감리교회 류재덕 목사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조목사님께서 미리 장례 준비를 위해 지침을 주셨는데, ‘조화, 조의금 절대사절’이라 하시고 “내 장례 하관식엔 꽃 한송이도 못쓴다. 내가 가면서 세상의 이쁜 꽃 가지고 갈 마음 없다”하셨다는 답이 왔습니다.
조목사님은 ‘기독교 죄악사’와 ‘일본의 죄악사’를 쓰셨습니다. ‘일본의 죄악사’를 지난주에 받았습니다. 권두언 ‘나는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가?’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일본이 저지른 범죄는 그 규모와 잔인성에 있어서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침략과 전쟁사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가 없는 가장 야만적인 인권 유린 범죄였고, 인간 살육의 죄악사였다…나는 일본 동경에서 대학을 졸업했으며, 일본을 좋아했다. 함께 학문에 힘쓰며 기숙사에서 같이 뒹굴던 친구들, 고결한 학문을 지도하던 교수들, 이 모두를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좋은 사람들의 동족이 영원히 우리 민족의 원수가 되는 것을 막고 싶다는 생각에서 책을 쓰겠다고 결심했다. 왜냐하면 일본 정부의 은폐로 많은 일본인들이 진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나이 101세로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면서 약 100미터 정도 걸을 수 있는 상태다. 그래서 내가 죽기 전에 자신들의 범죄 사실을 일본인들에게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집필을 시작했다.”
류목사님이 “김목사님, 꽃은 저희 교회에서 잘 준비하도록 할께요. 그 마음은 조찬선 목사님에게 전달된 줄 압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 마음은 부끄러움입니다. ‘기독교 죄악사’ 를 보내주셨을 때, 솔직히 저는 “그렇지 않아도 요즘 교회 어려운데…”하는 불편한 마음이었습니다. 10년 전 한완상 장로님이 쓰신 책 ‘예수 없는 예수교회’를 주셨을 때, “장로님, 책 제목이 목사인 제게 많이 불편합니다”했더니 “김목사가 한국교회 잘 몰라서 그런다”하시며 가슴아파 하셨습니다. 저는 교회 비판의 소리를 불편해 합니다. 그래서 내 딴에는 교회를 변호하는 말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내가 존경하는 어른들이 교회에 대한 아픈 이야기를 말씀하셔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조목사님이 역사를 바로 알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글을 쓰시면서 얼마나 많은 공격과 비난을 받으셨을지 알면서도 고맙다는 말씀도, 도움도 한번 되지 못한 까마득한 후배의 용서를 구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저의 지난 목회 초반 20년은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가리는 목회를 선호 했다면, 후반 20년은 중도적 입장을 취했던 것 같습니다. 내 딴에는 총체적 복음(Wholistic Gospel)을 추구한다 했지만 제대로 못해서 그런지 나이를 먹으며 몸을 사리느라 보수화 되었다는 말 그리고 양비론자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실제적으로 우리 교단이 직면한 동성애자 목사안수 문제도 그렇고 왠만한 사회 문제에 대해 저는 갈라내면서 가기보다 돌아가거나 품고 같이 가기를 선호합니다. 오래 전 제가 목회를 선명하게 하기를 바라는 후배에게 “나는 진보적 복음주의 목회를 추구한다”고 했더니 그 친구는 “그러다 둘 다 못할 수 있습니다”라고 경고를 합니다.
얼마 전에도 누가 “목사님은 밥 같이 먹고 나면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는 비판을 하더군요. 그 분이 볼 때 나와 ‘진영’이 다른 사람과 밥을 먹고 그 사람을 좋게 평가한 것 때문입니다. 아마 이 문제는 제가 평생 고치지 못할 약점일 것 같습니다. 오래 전 교회 문제로 심하게 저를 몰아세우는 장로님에게 “장로님, 나 배가 고파서 장로님과 다툴 힘이 없네요. 우리 감자탕 하나 먹고 계속하죠”라고 하고 감자탕을 먹었습니다. 그 이후 그 장로님과 저는 아직까지 한번도 안 다투었습니다.
저에게 큰 영향력을 준 선배 어른들 대부분은 강인하고 강직한 성품을 가지셨습니다. 백로와 까마귀가 어울리는 것 못하게 하셨고, 옳고 그름에 있어서는 한치 흔들림이 없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잘 안됩니다. 그래서 제가 존경하는 어른들을 생각하면 항상 부끄럽고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이 많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매서운 비판을 많이 받는데, 선배 어른들로 부터는 사랑을 좀 받습니다. 어제 보니 한완상 장로님이 제게 주신 책에 이렇게 쓰셨네요. “김정호님, 따듯하고 뜻 높은 예수 목회를 축하드리며…Atlanta에서 2009.11.15”
이렇게라도 오늘은 왠지 내 스스로 나를 위로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