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해거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해 가을이 다숩게 익어가도 우리 집 감나무는 허전했다. 이웃집엔 발갛게 익은 감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러운데….나는 밭일하는 어머님을 찾아가 징징거렸다. 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린당가… 응 해거리하는 중이란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허리굽혀 땅심과 뿌리를 보살펴야 하는 거라며 정직하게 해거리를 잘 사는게 미래 희망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라며.”
‘숨고르기’, ‘해거리’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꽃도 열매도 피우지 않고 뿌리 힘을 키우는 그래서 박노해는 “해거리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발아래를 쳐다봐야 하는 법이란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코로나 지난 3년을 거쳤습니다. 정말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함으로 기다리면서 바닥을 잘 다질 수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지난 주일 교단 현안 문제를 설명하는 타운홀 미팅을 하고 제가 교인들의 마음을 잘 살피지 못했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나같은 동네목사가 잘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권교회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과 정치 지형(political landscape) 변화에 어지럽고 숨죽여 지내느라 정작 교인들은 숨막혀 답답해 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교인들을 보호하고 교회를 잘 지켜내야 한다는 의도였지만 실제적으로는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소통을 못한 것입니다.
한인회중 창립 50주년을 바라보는 오랜 세월 뉴욕 이민 1번지 교회로서 오늘의 후러싱제일교회를 지켜낸 교인들인데 자기 말과 생각 내놓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다른 힘에 의해 운명이 결정당해야 하는 억울한 일 절대 없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단의 은혜를 입었다는 말 하는 사람들 있는데, 교단이 교회의 은혜로 이제껏 존재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연합감리교회에 만연한 문화가 교단 윗선의 눈치를 많이 보고 바닥 땅심과 민심을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후러싱제일교회 아무리 어려워도 언제나 교단 분담금 철저하게 100% 냈습니다. 어제 40년만에 한국 처음 나가는 장로님이 “먹고 사느라 정신없어서 40년동안 한번도 못나갔네요”하셨습니다. 그런 교인들이 어렵게 벌어서 낸 헌금으로 뉴욕연회 분담금 최고 많이 내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2년전 부터인지 우리교회보다 조금 더 내는 교회가 있더군요. 맨하탄 부자동네에 있는 교회인데 교회가 고층빌딩 안 올리는 댓가로 4억불(5,560억원)인가 보상받은 교회입니다. 이것도 좀 우습다 생각했습니다. 그 교회가 수십만불 더 내는 것도 아니고 수천불 더 내게 하면서 뉴욕연회 분담금 가장 많이 내는 교회가 한인이민교회가 아니라 맨하탄 백인 부자 교회가 되게 하네요.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들의 현실을 보면 소수민족 교회들이 별로 없습니다. 물론 개인들은 교단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개체교회는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질문을 어느 모임에서 던졌더니 한인교회들이 무식하고 무지해서 진보교단과 맞지 않는다고 어느 목사가 그러더군요. 물론 고쳐야 할 것 많고 배워야 할 것 많습니다. 그러나 함부로 한인교회를 우습게 여기고 판단하는 교만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연합감리교회가 제도적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자기 모순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교단지도자들은 이민교회 교인들의 민심을 존중해야 합니다.
요즘 제가 가장 안타까운 것이 전통주의 신앙이 뭔가 모자라는 교화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현실입니다. 교회에서 ‘진보’라는 것은 예수의 뜻과 정신으로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잘 증거해서 교회가 발전하는 것이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존재목적 본질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린지 너무 오래되었고 무책임한 교권잡은 자들이 교회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동성애자 인권문제가 아닙니다. 현재 연합감리교회 교단법 장정에 동성애자들의 인권존중은 물론 하나님 사랑받을 은혜의 자리에 환영받아야 한다는 것 분명합니다. 문제는 2019년도 특별총회에서 ‘동성행위 행하는 자는 목사 안수 불허’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교단법을 어기면서 불법을 자행하는 사람들이 미국내 교권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교단법을 존중해야 한다는 전통주의 신앙을 가진 교인들이 무식하고 무지하게 동성애자들을 핍박하고 저주하는 사람들 아닙니다. 성경적 전통주의 신앙을 가진 이민교회들이 교화되지 않으면 없어져도 좋은 불편한 집단으로 취급당하는 현실이 기막힙니다.
‘순진이여 안녕(Farewell to Innocence )”을 쓴 알레 부섹 목사가 남아공 인종차별을 지지하는 백인 기독교인들에게 “당신들의 그 순진함을 버려라! 그 종교적인 순진함으로 인해 흑인들이 억압당하고 죽어가고 있다”라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60년대 마틴 루터 킹목사가 7-80년대 남아공에서는 넬슨 만델라나 데스몬드 투투주교 등이 인종차별 반대 투쟁을 할 때 백인교회들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바라”(로마서 13:1) 들먹이면서 크리스천은 세상을 바꾸려는 정치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정말 무엇이 문제이고 과연 우리 한인교회의 미래가 어찌될 것인지 예수님이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온유하라”하신 말씀 잘 새겨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