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새벽기도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동네 목사님이 전화를 해서 독립기념일 연휴인데 뭐하냐고 묻습니다. 연휴라고 해도 새벽기도 그대로 있고 주일 준비해야 해서 그냥 교회에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저녁에 고기 굽는데 오라고 합니다. 참외 한 박스 들고 갔더니 먼저 온 목사가 소리를 지릅니다. “아니 형님! 여기는 연휴에 오갈 데 없는 인간들이 모이는 곳인데 왜 오셨어요?” 그래서 “나도 갈 데 없는데 오라니 왔지” 했습니다. 초대한 침례교 목사님 교회는 일반 가정집을 교회로 사용하는데 뒤 뜰에 텃밭이 넓어서 각종 채소를 재배합니다. 막 구워 낸 고기를 깻잎과 상추에 싸 먹는데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는듯 했습니다.

제가 몇 주 전 설교에서 주중에 토요일까지 쉬지 못하고 일하는 분들 연휴가 되면 놀러 가서 그 동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좋으니 잘 쉬고 놀면 좋겠다 했었습니다. 정말 가족과 더불어 ‘안식’이 필요한 분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 연말이면 주일성수 개근상을 주는 전통이 있기에 제가 그만두게 했습니다. 처음 갔을 때 당시 7년 개근을 하신 교인에게 “제발 주일 한번 빠지고 가족과 여행 다녀오세요” 했다가 시험 들었지만 나중에 고마워했습니다.

주일성수를 너무 소홀히 하는 분들도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가족과 휴가를 다녀오지 않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미국 생활 자체가 힘겨운 것만 아니라 영어도 잘 못하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분들 가운데 특별히 그렇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신 목양지이며,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다녀오는 것은 가정 목회입니다. 교회가 중요한 만큼 교인들 가정이 중요합니다.

1960년대 어린 시절 아버지 미국 유학 떠나셨고 이민 와서 몇 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하는 놀이 문화가 없었던 것이 참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옛날 개척교회를 할 때 목사가 자기 가족 챙기는 것이 푼수 같다는 생각에 교인 아이들은 안아줘도 주일에 내 아이들은 오히려 안아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처남은 어린 시절 목사인 아버지가 교회에 오는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안아주는 것이 못마땅해서 주일 아침이면 교회 문 앞에서 막대기를 들고 교회 오는 아이들을 쫓았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정신없이 목회한답시고 아이들 어릴 때 아비 노릇 잘 못했던 것 늙어가는 나이에 많이 후회합니다.

제가 40대 초반에 고혈압이 있다고 해서 약을 먹지 않고 이기려고 잠시 새벽기도를 쉬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가 전화하셔서 “나는 목사가 새벽기도 하다가 죽었다는 말 들어본 적이 없다” 하시기에 다시 새벽기도 나갔습니다. 아버지가 목회하다 50도 되지 못한 나이에 돌아가신지라 나는 은퇴까지 버티려고 몸을 사리려 했는데 정작 나를 낳아 주신 어머니도 내 몸 사리는 것 내 편 들지 않으셨습니다. 애틀랜타에 갔더니 사택이 있는데 상태가 좋지 않아서 교회에서 아파트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장모님이 아내에게 “목사 가족이 교회 사택에서 사는 거지 어디에서 산다는 거냐?”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목회 문화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목사의 건강은 하나님도 책임지지 않으신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고는 내 몸 내가 지켜야지 남들 눈치 보는 목회하다 일찍 죽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뉴욕 조금만 나가면 대서양, 허드슨강, Appalachian 산맥을 위시한 천하 자연 휴양지가 지천에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 조건이 천하에 좋은 동네입니다.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