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어느 TV예능 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이 어떤 소녀에게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질문했습니다. 그 때 이경규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부담을 주자, 옆에 있던 이효리가 “뭘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해. 그냥 아무나 되어도 괜찮아.”라고 한 말이 젊은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2019년 코리아 트렌드’에서 이를 ‘소확행’이라 표현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어떤 틀에 묶여서 살지 말자는 것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 연회에 참석해서 제대로 있어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연회가 항상 6월 첫주이니 개회예배가 끝나면 바로 낚시를 가고는 했습니다. 한번은 이경희 목사님과 곽노순 목사님을 모시고 호수낚시를 갔습니다. 이 목사님은 줄에다 바늘을 수십개 달아 던져놓는 줄낙을 하셨고, 나는 가짜미끼를 이용해 농어 낚시를 했습니다. 농어 낚시는 계속 움직이면서 가짜미끼를 던졌다 끌어들이는 동작을 바삐해야 하는 낚시입니다. 곽목사님은 그냥 한곳에 홀로 가만히 계셨습니다. 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고기를 잡으려고 하니까 곽목사님이 부르시더니 한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중국의 강태공은 바늘없는 낚시를 하면서 천하를 가슴에 담았는데 김목사는 얼마나 잡으려고 그리 소란을 피우는가?” 그러시면서 “허탕치는 자유를 배우게나” 하셨습니다.
제 사무실에 붙어있는 글이 하나 있습니다. 몇 년전 김지하 시인이 써 주고 간 글입니다. ‘빈터에 바람’이라고 썼습니다. 글의 뜻을 묻지는 않았지만 입안으로 뇌까리면 마음이 열리는 기분을 줍니다. 이 글을 생각하면서 가능하면 내 생각과 내 욕심으로 가득찬 인생 살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물도 흘러야 하고 공기도 맴돌아야 하는 것 처럼 항상 내 삶에 새 바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오래전 애틀란타에서 영어목회를 하던 김태준 목사가 시카고로 떠나가게 되어 내가 선물 하나 사주려고 했더니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으니 달라고 합니다. 뭐냐 물었더니 내 사무실에 있는 개구리 표본을 달라고 합니다. 내가 30여년전에 멕시코에 갔다가 길거리에서 파는 것을 $3인가 주고 사온 것인데 바람이 배에 잔뜩 들어간 개구리가 멕시코 큰 모자를 쓰고 기타를 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것을 달라고 하는지 물었더니 자기가 앞으로 매주일 설교하기 전에 그 우스꽝스러운 개구리를 보고 해야겠다고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목사가 된 그 친구가 영어도 잘하고 신학교도 프린스톤이라는 괜찮은 신학교를 나온 인물인데 설교를 할때면 항상 자기가 대단히 거룩하고 똑똑한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설교를 하기에 제가 항상 야단을 쳤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 말이 “목사님이 제게 설교는 교인들과 눈높이를 맞추어야지 교인들 위에 올라가서 하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그리 하려면 저 개구리를 보면서 제 자신을 겸손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많이 아끼던 것이고 내게도 정말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많이 아까웠지만 그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몸이 좀 부실하면서 사순절 기간 가만히 있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도 자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거창한 말과 거룩한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피곤하기도 하고 왠지 공허하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면 빈틈이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자기 생각으로 꽉 차있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면 좋습니다.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어느날 부담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설교도 교인들에게 억지로 감동을 주려고 하거나 은혜를 끼치려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설교 한마디가 걸려서 그렇게 살지 못함에 괴로워해야 하는 교인들이 있다는 것을 목사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목사는 설교를 하면 그만인지 모르지만 교인들은 하나님 말씀이라 믿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니까요.” 나는 목사로서 참 일방적으로 말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설교를 들어주는 교인들에게 참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언제인가 교회를 쇼핑하는 분이 “목사님 설교는 아무리 들으려고 애를 써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이 교회를 사람들이 찾아오는지 모르겠어요.”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무척 감사했습니다. 아내만 내 설교를 이해 못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사람이 특별히 이상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이 된 것 같아서 고마웠습니다. 내 설교를 싫어하는 분들도 있고 이해가 안된다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다는 것이 왠지 나를 설교의 부담에서 자유케 했습니다. 잘하려고 해도 싫어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못해도 좋아하는 분들도 있다는 것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기만 했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의 연약함때문에 그리스도의 강함이 드러낸다는 말이 있듯이 때로 우리가 못나고 잘못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가 드러난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