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교회력 설교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의 길 가신다고 하니까 제자들이 근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 믿고 또 나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이 가셔야 할 길 가는데 ‘그 곳에 가면 거처를 예비해서 나중에 제자들이 오면 영접하겠다’ 말씀하십니다. 그 때 도마가 ‘어디로 주님이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그 길을 어찌 알겠느냐’고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도마가 길을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제게 위로가 됩니다. 요즘 저도 많이 답답하니까요. 저는 갈라짐의 현실 자체가 힘듭니다. 나가겠다는 교인들이 다수이지만 비록 소수라도 남겠다는 교인들이 있고, 후러싱제일교회 못 나가게 하려는 뉴욕연회 리더십의 입장도 강경합니다. 어느 길 선택도 절대 쉽지 않습니다. 어떤 결정을 해도 교회 내부에는 갈등의 아픔이 있고 진영논리에 빠진 사람들의 공격과 비난이 쇄도할 것입니다. 나 자신도 갈림길에서 힘들어 하는데 저에게 길을 묻는 사람들이 적지않습니다. 이 길 저 길 선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 들으니 이 길도 저 길도 예수님 아니면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이 가는 길이면 이 길이나 저 길이나 모두 생명과 진리의 길입니다.
도마는 항상 이렇게 정직하게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예수님에게 질문하는 제자였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찔리신 창과 못자국을 봐야 믿겠다고 한 것도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중심에 흐르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이거냐 저거냐가 아닌 아주 다른 차원의 세계입니다. 예수께서 “너희들이 둘을 하나로 만들 때 … 위를 아래와 같이 만들 때, 그리고 너희가 남자와 여자를 하나 된 자로 만들어 남자가 남자 되지 아니하고 여자가 여자 되지 아니할 때…비로소 너희는 천국에 들어가게 되리라”하셨습니다. 이것은 자기만 알고 있는 세계를 뛰어넘으라는 것입니다. 흑과 백이 서로를 알고, 여자와 남자가 성차별과 한계를 뛰어 넘는 성숙에 이르고, 동과 서 그리고 남과 북이 만나야 비로소 온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못한 인간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을 절대적으로 고집합니다.
제가 교단문제 과감하게 보수 신앙을 지키려는 GMC를 선택하도록 용감한 선언 하기를 바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UMC에 남겠노라 진보 예언자적인 입장 발표해 주기를 바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 입장은 변함없습니다. GMC와 UMC는 서로 존중하고 배워야 최고최선의 GMC 와 UMC가 될 것입니다. 이런 말 하는 저에게 이제는 어느 기차 탈 것인지 결단할 때라고 그만 이상적인 헛소리 하라고도 합니다. 어쩌면 저는 막차 떠난 기차역에 혼자 있는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마음이 없으면 그 어느 곳도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새롭게 시작하려는 GMC교단 겸허하게 그리고 몸담고 있던 교단을 탈퇴해야 하는 현실을 아파해야 합니다. UMC 역시 뭐가 잘못되었는지 정직하게 점검하고 아파하고 회개하고 분골쇄신의 각오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제가 후러싱제일교회 담임목사로서 우려하는 것은 교단분리과정이 억울하게 만드는 일들로 인해 교인들 상처받는 것입니다. 또한 교인들이 무기력감을 가지거나 혼돈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교회를 어지럽히는 기회를 삼으려는 못나고 못된 사람들은 무척이나 열심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교회 교인들이 만든 문제가 아닌데 6.25동족상잔처럼 강대국들의 대리전쟁에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을 겪고 휴전된 지 70년이 지나도록 원수가 되어 살아가는 것처럼 되는 것입니다. 때로 교회가 전쟁을 치르고 나면 기운이 남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교회 찾아 떠나면 되지만 가장 큰 피해자들은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입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교회에 대한 실망으로 교회 근처에 오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 죽이는 일에 앞장 선 것은 자기들 방식의 종교를 지킨다고 사람 죽이는 것 하나님 뜻이라고 여긴 보수 바리새인들이었지만 정작 배신의 선두에 선 것은 예수를 유대 민족해방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여겼던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러니 이 시대 우리는 바리새인적인 보수와 권력지향적 기회주의 진보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종교를 지키는 것도 세상을 바꾸는 것도 목적은 사람을 살리고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고 아픈 자를 고치고 하나님 나라 희년의 역사를 이 땅에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예수님 목회에 집중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합니다. 유대 랍비가 말한 솔로몬의 지혜 “It too shall pass”(이 또한 지나가리)를 생각합니다. 다 지나 갈 것입니다. 그러나 길 진리 생명 예수님만 영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