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이 많습니다. 결혼반지도 없어졌고 너무 귀해서 쓰지 않고 잘 모셔 놓았던 내 이름이 새겨진 몽블랑 만년필도 없어졌고 틈만 있으면 사 모았던 좋은 낚싯대들도 이사를 다니는 가운데 없어졌습니다. 잃어버린 것들은 물건만이 아닙니다. 사람 관계도 그렇고 내 목회의 자부심으로 여겼던 것들도 무너지고 사라졌습니다. 청력을 잃어 보청기를 끼고 시력도 약해지고 어제까지 젊었는데 오늘 자고 일어나니 노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는 지나간 것 너무 오래 바라보지 않고 앞에 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 잘하게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것 생각하면 잠을 잘 수 없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분하고 억울하고 안타깝고 아쉬운 것 생각하면 오장육부가 뒤집혀도 수도 없이 뒤집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 하나님은 나에게 잃어버린 것은 잘 잊게 하시고 매일 새롭게 주어지는 것들이 아무리 작아도 기다리는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늘 새롭고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새벽기도 전에 커피 조금 넣고 미숫가루 풀어 마시는 한 잔이 나를 기쁘게 하고 일찍 죽지 않으려면 자기 말 순종하라고 아내가 아침에 만들어 주는 토끼들이나 먹을 푸성귀 아침도 맛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어릴 적부터 밥 먹는 시간을 언제나 기다렸고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평생 단 한 번도 밥이 맛없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미리 내려놓고 버리는 훈련을 합니다. 이제 책은 버리려고 합니다. 책이 많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던 시대가 아니기도 하고 가볍게 움직여야 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낄끼빠빠’를 잘 하려고 합니다. 나이 먹으면서 이거 잘못해서 눈치 없고 염치없는 노인네 취급당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뉴욕 교계 모임에 보면 앞자리에 앉으려고 욕심부리고 기자들이 사진 찍을 때 자기 얼굴 보이려고 몸부림치는 목사나 장로들이 참 많습니다. 늙어도 그렇게 폼 나지 않고 허세부리는 꼴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그런 추한 꼴 보일 가능성이 있는 모임에는 가지 않고 사람 관계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사회의식과 신학적 이해가 비슷한 사람들을 선호했는데 인생 좀 살아보니 의리가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어려울 때도 나와 밥을 먹고 커피 마신 사람들이 귀합니다. 신기한 것은 내가 보다 젊은 시절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약한 모습이 많았을 때 나와 사역을 했던 목사들이 수십 년 세월 지나 지금까지도 찾아오고 연락을 합니다. 어쩌면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처음 태어난 딸과 함께 엄마가 되는 것을 배운 모녀의 사랑과 의리가 돈독한 것이 그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벼워지니까 꼭 필요한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라봄의 법칙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바라 보고 별을 세어 보라 하시고 믿음으로 미래를 품으면 이루어지리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현실에서도 아름답고 좋은 것 보려 하고 못나고 흉한 것은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희망과 행복을 위해 절망과 불행에 집착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다 잘 되게 하실 줄 믿어 오늘 감사하고 내일을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