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한국 떠나오기 전날 남양주에 있는 장인 장모님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늘 자동차로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전철과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다행히 버스 정류장에서 산이 멀지 않았습니다. 가는 길에 지난 번 부흥회를 인도한 김주찬 목사님 연락이 왔기에 구로에 있는 식당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남양주에 가는 길에 본 ‘구리’를 ‘구로’로 착각하고 가까운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나 아내나 한국 떠난 지가 50년 넘었고 대중교통을 잘 사용할 줄 몰라 버스와 전철을 타고 걷고 아침에 떠난 길 저녁에 들어왔습니다. 고생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누구에게 부탁하는 것이 언제나 미안했는데 그러지 않아 좋았습니다. 산소가 있는 산길 내려오다가 땅에 떨어진 밤을 주어 까먹었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에 있는 산에 친구들과 밤 따러 갔던 생각이 났습니다. 버스를 타고 서울과 경기도를 동과 서 그리고 남과 북을 가로질러 볼 수 있었습니다. 편한 길이 주지 못하는, 불편한 길이 주는 기쁨과 보람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난번 희년세미나를 참석했던 후배 목사가 섬기던 교회를 사임했다는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환갑 가까운 나이에 삶과 생산을 함께 나누는 신앙공동체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얼마전에 그런 말 하기에 제가 그냥 목회 잘하라고 했었는데 이미 결정했기에 잘했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여행에서 돌아와보니 제 책상에 박영관 목사가 쓴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개척 계획서가 놓여있었습니다. 몇달 전 개척 이야기를 하기에 나이 50살 넘어 어려우니 괜찮은 UMC목회 자리 찾자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괜찮은 교회 거의 결정이 되었었는데 GMC(글로벌감리교회)를 개척하기로 한 것입니다. 잘했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나름대로의 좁은 길 가는 것입니다. 넓은 길이 주지 못하는 좁은 길이 주는 보람과 행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어쩌면 UMC에 남아서 목회하는 것도 좁고 불편한 길일 수 있습니다. 전통적 신앙을 가진 교인들이 절대다수인 한인교회 목회를 UMC 소속으로 한다는 것 앞으로도 더 많이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지난 40여년 목회를 하면서 지금처럼 이렇게 ‘존재적 어려움’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목사들도 교인들도 다 어려워합니다.
요즘 많이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욥의 고백입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23:10) 때로 우리는 아파야 비로소 몸이 귀한 것을 알게 됩니다. 코로나 사태만으로도 어려운데 우리는 교단분리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어려움이 닥쳐올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셔서 이런 어려움을 교회에 주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중앙아시아 선교지를 방문하고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 이민목회 어렵다는 말 쉽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입니다. 미국 목회 아무리 어렵다 해도 키르기스스탄(일년 국민소득 GNP $1300)이나 카자흐스탄($5,000) 교회들만큼 어렵지 않습니다. 그곳의 목회자들 모두 자기 먹고 살아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목회를 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모슬렘과 정교회가 절대 다수인 나라에서 개신교 목회를 하는 것은 멸시 천대 받는 일입니다. 그런 현실에서 목회하는 중앙아시아 목사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목회 어렵다는 말 자체가 사치스러운 것이라는 반성을 했습니다.
몇 년 전에 ‘교회 부흥 메뉴얼’을 써 달라는 출판사의 부탁을 받았었는데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중앙아시아 목회자학교를 인도하면서 써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바른 일을 함’(Doing the Right Things)과 ‘일을 바르게 함’(Doing Things Right) 둘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에 보면 너무 교회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따지는 원론에 대한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본론인데 말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전도와 선교가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면서 세상을 넓게 보는 것이 원론이라면 땅에 발을 디디고 걸어 다니면서 보는 것이 본론입니다.
모르는 길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버스와 전철을 타고 그리고 걸어서 찾아다닌 불편한 길이 차를 타고 다닐 때 경험하지 못한 보람과 배움을 주었습니다. 교회가 가야 할 길에도 가보지 않은 길이 새로운 열린 세상 경험이 되고 불편한 길이 예수님이 가라 하신 좁은 구원의 길이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