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Racism)은 악한 것입니다. 한 개인이 가지는 차별의식(Racial Prejudice)도 차별당하는 사람을 비인격화 하는 잔인한 짓인데 이것이 집단이나 제도적인 힘으로 그리하게 되면 큰 악행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민족은 고향 땅을 강제로 떠나 타국에서 살아야 했던 디아스포라 역사를 살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꽃송이 – 우리는 조선학교 학생입니다’ 책 첫장에 보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유언으로 “나를 대신하여 재일조선학교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 달라”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끌려갔던 동포들에게 가해진 잔인한 일제의 악행은 아직까지도 남아있습니다. 미국 이민정책 역사에 담겨져 있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에 대한 제도적 인종차별도 악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가 살고있는 뉴욕에서 기를 더욱 높이는 아시안계 차별 악행을 보면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러시아 선교사 조영철 목사님이 언제인가 “우리 모스코바 연합감리교회 예배드리는 한국 주재원들이 고려인들을 차별하고 고려인들은 러시아에 먹고 살려고 온 조선족들을 차별하고 조선족들은 북한에서 온 탈북자들을 차별합니다. 같은 동족이라는 것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아픈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당하는 차별,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과 소외는 말할 것 없고 조선족 동포를 포함한 동포들에 대한 그것도 모두 철폐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오늘 10명 성도들이 입교를 하고 후러싱제일교회 교인이 됩니다. 입교문답은 아주 간단하지만 세례문답은 길게 되어 있습니다. 후러싱제일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 나오는 질문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구세주이심을 믿으며, 그의 은혜를 의지하여 국적, 인종, 성별, 연령, 계급의 차별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주님으로 섬기시겠습니까?”입니다. 그 질문 후에 나오는 것이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습니까?”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렇게 세례문답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한 사람들이 연합감리교인들입니다. 그러니 사람에 대한 어떤 차별도 하나님 앞과 교회 앞에서 굳게 약속하고 성부성자성령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를 무효화하는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영적인 신앙’이라는 것을 이 땅에 살아가면서 가지는 예수님의 사람이 지켜야 할 사명이 아닌 사람 사는 것과 무관한 이야기하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에서 예루살렘 교권을 가진 사도들과 이방인 선교의 사명을 가진 사도 바울이 치열하게 이 문제로 갈등 하다 해결이 안되니 결국 성령이 개입하셔서 이방인 고넬료 집에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 말씀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이방인 차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예루살렘 동네 소수 유대인 집단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지만 이 사건 이후 베드로가 바울을 품으면서 세계 선교로 울타리가 확장되는 새 역사가 열렸습니다.
저는 거의 50년 가까이 미국에서 삽니다. 그런데 미국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필요가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교회 모토가 ‘예수 잘 믿고 예배 잘드리는 교회’입니다. 이것 잘하려면 사람차별하는 어떤 모습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교회에서 집단이기주의도 버려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보혈과 은혜로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 사랑받은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 차별 못할 것입니다.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기쁨이 있으면 누구라도 구원받는 것 보는 행복을 인생 우선순위로 삼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교단이 동성애자 목사안수문제로 분리의 현실을 맞이했지만 교단 법인 ‘장정’에서 “동성행위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입장이 분명하면서 동시에 동성애자의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인간존엄을 무시하거나 파괴하는 차별 역시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 분명 합니다. 앞으로 분리되어 우리교회가 어느 쪽에 속하건 어떤 모습으로도 사람 차별은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차별은 사람의 존엄을 파괴하고 생명을 죽이기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람을 살리는 복음을 믿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는 율법의 종노릇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미국 전역에서 끊이지 않는 아시안들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도 그랬지만 한국 언론에 나온 20대 초반 성전환 청년의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그 젊은이가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어느 교회라도 그에게 소망을 주고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없었을까?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소외와 정죄, 혐오와 차별 이는 예수 십자가 보혈과 은혜를 무효화 시키는 죄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로마서 1:6)했습니다. 예수의 사람들인 우리들의 할 일은 소망과 사랑을 주고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