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정호

김훈의 장편 소설 ‘남한산성’ 책 뒷장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해 겨울,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고난주간 설교를 준비하는 나로서는 너무도 반가운 표현입니다. 이런 글이 계속 됩니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 내지 못할진대, 땅으로 뻗은 길을 걸어 갈 수밖에 없으리.”

매일 매일의 삶이란 너무도 많은 군더더기와 헛된 몸짓의 반복이 많기 때문에 허탈할 때가 많지만 글 속에서 만나는 세상은 그래도 순화되고 아름다움을 향한 몸부림의 낭비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책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현실로 바로 돌아오는 훈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책 속에서 아름다움을 만나면 그만큼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공부도 그렇고 기도의 시간도 하나님과 만남의 깊이에 따라 내가 살아가는 어떨 때는 냉혹한 삶의 현실이 그만큼 거룩해지고 아름다워 집니다.

요즘 한국이나 미국이나 선거철이라 많은 말이 난무합니다. 그래서 언론지상이나 인터넷을 들여다 보면 조소적이고 심한 비판의 말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고 세상을 들여다 보는 것도 그렇고 비판과 비난은 잠깐이어야 하고 소망과 가능성 발견에 많은 시간과 관심을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만들어 가는 세상은 그것이 교회이건 가정이건 완전한 이상적 현실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으로 이미 이루어 진 것으로 믿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거룩하고 아름답고 선하고 의로운 하나님 역사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많이 부족해도 저는 우리가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교회를 세워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의 치유와 구원 그리고 해방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소망보다는 포기에 익숙합니다. 사랑보다는 미움이 앞섭니다.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 비판하고 비난하기에 빠릅니다. 저는 현실주의자입니다. 관념적 이상주의자들은 역사변혁에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너무도 절실합니다. 철저하게 육신의 한계 모든 고통을 당하시고 마지막 숨마저 모두 하나님께 드리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생생한 삶의 그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현실이요 소망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할 인생의 목표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더욱 사람을 살리고 사랑하는 일에 쓰임받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