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후러싱제일교회에서 뉴욕연회 Bickerton 감독과 오전에는 아시안 목회자들, 저녁에는 평신도 지도자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1시간 가량 교단이 처해있는 현실을 제시하고 감독이 결론을 대신한 말은 “어떻게 들러붙어 싸우지 않고, 각자의 길 잘 가도록 축복할 것인가?”(How might we bless and send rather than fight and rend?) 였습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교단총회 때 마다 격렬하게 다툰 동성애자 목사안수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 더 이상 불가능 하니 서로의 신앙양심을 존중하고 각자의 길을 가려는것입니다. 그 동안 연합감리교회는 ‘다양함 속에서 일치’(unity in diversity)라는 구호는 말할 것 없고 ‘열린 마음, 열린 생각, 열린 문’(Open hearts, Open minds, Open doors) 슬로건을 가장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외친 구호와 현실이 너무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수 많은 회의를 거듭 할수록 상대방을 ‘악한 세력’으로 몰아가는 현실을 보는 것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 교단의 교세는 급격히 감소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를 모으기 보다 아래 위 좌우사방 모두 열매없는 ‘회의’하느라 세월 보냅니다.
제가 그날 회의가 끝나고 감독에게 “어떻게 결론을 회의적인 화두로 마무리 하는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온 모세처럼 확신에 찬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더니 그 분 말씀이 “나도 정말 그러고 싶다. 그런데 아무도 양보하지 않고 서로 상대방에게 교단을 떠나라고 소리지르는 현실이니 더 이상 어렵다”였습니다. 그 말 속에 기골이 장대한 육척장신의 대 뉴욕연회 감독의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서로 존중하며 갈라서는 것이 발전적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서로 공존하기에 생활 터전이 좁아서 자주 다투게 되니 각자의 길로 헤어졌고,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의견충돌 후 각자의 길을 가 최고최선의 선교열매를 맺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연합감리교회 교단이 너무 큽니다. 1천2백만 성도를 가진, 미국이 중심이지만 러시아를 포함한 동서유럽,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필리핀 등 아시아지역을 포함한 거대한 교단이 오늘날 같은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습니다. 그러니 들러붙어 죽자고 싸우기보다는 갈라져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 교단의 이런 위기의 현실이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창조적인 발전의 기회가 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때로 사람들이 높이 쌓아 놓았던 것이 무너지고 바닥에 내려와야 새로운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교회도 바닥의 현실을 보아야 무엇이 진정 지켜내야 할 것이고 무엇을 내려놓고 버려야 할지 제대로 된 판단을 할수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감리교가 “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에는 자유, 모든 일에 사랑” (In Essentials, Unity, Non-Essentials Liberty. All things Charity)의 정신을 존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치(Unity)는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획일(Uniformity)은 한가지 방법 만고수하는 것입니다.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인내와 포용과 사랑과 은혜가 요구됩니다. 획일은 목소리 큰 사람이나 힘있는 사람이 밀고 나가면 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쉽습니다.
오래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대회 폐회식에서 달라이 라마가 한 발언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기 어렵다면 서로 미워하지나 맙시다.” 인류역사의 큰 부분은 종교간 전쟁입니다. 오늘날도 깊이 들여다 보면 분쟁과 전쟁의 바닥에는 종교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현실은 이제 사랑하지 못하면 미워하지나 말아야 할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길을 간다고 해도 지켜내야 할 사명은 변함이 없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감리교(Methodist) 운동의 목적을 ‘영국 교회를 참된 교회로 개혁하는’(to reform the Church of England)것과 ‘민족을 개혁하는 것’(to reform the nation) 그리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전파하는 것’(to spread scriptural holiness throughout the land)이라 했습니다. 웨슬리의 관심은 교단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 거룩한 개혁(성결)의 사명을 이루는 복음적 운동체였습니다. 우리가 오늘이 시대 회복해야 할 너무도 중요한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