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밴쿠버 광림교회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 미주연회 캐나다 서지방 연합집회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뉴욕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캐나다에 계신 목사님 한 분이 연락을 해서 뉴욕에서 목회할 길을 부탁했었습니다. 저도 온 지가 얼마되지 않았기에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고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나름대로 자상하게 답을 했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그 분이 감리사가 되어서 저를 초청한 것입니다. 그 때 제가 했던 말이 무척 고마웠었다고 합니다.

집회가 열리는 교회의 담임목사는 제가 오래 전 애즈베리 신학교 한인학생회 초청으로 설교를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만났던 신학생이었습니다. 당시 교단에 영향력있는 장인께서 내게 미국 목회 자리를 부탁했었는데 제가 돕지를 못했습니다. 결국 박사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3년 전에 왔다고 합니다. 유학생으로 고생하던 모습을 보았는데, 큰 교회 목회를 하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한달 전 쯤 인천에 있는 대형교회 담임목사로 현재 부목사가 후임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식을 알려주는 목사님 말씀이 “내가 김목사님에게 미국에서 목회할 길을 부탁했었던 그 목사예요. 그 때 미국에 들어갔었으면 이번에 후임으로 결정될 수 없었어요”합니다. 그 때 안되었기 때문에 지금 잘 된것입니다. 우리네 인생 길이 막히는가 하면 하나님이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시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도 목회가 어렵지만 캐나다 역시 많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밴쿠버는 자연환경이 태평양과 록키산맥이 있어서 살기 좋은 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생활에 많이 소홀하게 되는 지역입니다. 인생 즐기기 좋은 동네일수록 목회가 어렵고 치열하게 살아내야 하는 후러싱과 같은 동네가 영적인 갈망이 커서 목회하기 좋은 곳이라는 역설적인 말이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교인들은 물론 목사들에게 인생의 위기를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는 기회로 삼자는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고난 속에서 부흥을 이루었고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성령이 역사했습니다. 지금도 그 성령께서 살아 역사하시니 코로나 이후 큰 회복과 부흥의 역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주의 몸된 교회를 강건하게 세우도록 부름받은 소명에 거룩한 자존감을 회복하자고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밤 비행기로 월요일 아침에 도착합니다. 그리고는 바로 메릴랜드에서 열리는 연합감리교 동북부 지역총회(Jurisdictional Conference)에 뉴욕연회 총대의원 자격으로 참석합니다. 원래는 감독선거가 없는 것으로 모두 생각했는데 최소한 2명을 뽑게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후러싱제일교회 임원회에서 교단분리 추진을 결정했기에 이런 때 교단의 중요한 결정을 하게되는 모임에 가능한대로 참석을 하려고 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이 한인교회들의 미래에 중요한 결정들을 하게 되는 모임에 정작 한인교회를 대변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습니다. 연합감리교회에 소속해 있으면서 가장 중요한 ‘거룩한 대화’(Holy Conferencing)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마당 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식 연회 회의에 참여해서 발언하지 않으면서 회의장 바깥 마당에서 따로 모이는 짓거리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책임한 노릇인데 이런 일들이 교회에도 있습니다. 공개된 공간에서 당당하게 발언하고 투표에 참여하기 보다 비겁하고 유치한 일들을 어두운 곳에서 꾸미는 것 교회를 어지럽히는 짓입니다. 앞으로 교단관계가 어찌되든 우리가 보다 당당하게 책임있는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여기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어떤 일이나 누구에 대해서나 정당해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의 원칙을 고수해야 합니다. 저는 교단문제로 인해 갈등하는 현실에서 많이 강조하는 것이 “영적인 고지를 지키자”는 말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신사적이고 고상한 믿음의 원칙입니다.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이지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적대감이나 원수맺음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에 있어서 서로를 존중하고 정당하게 해야 합니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 나의 말 한마디에 힘을 얻은 목사님이 감리사가 되어 저를 집회에 초청했습니다. 내가 돕지 못했던 젊은 목사님이 오히려 잘 되어서 캐나다에 대표적인 교회에서 목회를 합니다. 크거나 작거나 우리의 모든 것들이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일에 아름답게 쓰임받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