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Hillbilly Elegy’(힐빌리의 노래)라는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실제 이야기입니다. 미국 문화를 말할 때 동부는 성공지향적이면서 배타적인 엘리트 문화, 서부는 개척정신과 자유분방적 문화, 중부는 미국의 척추역할을 해내는 성실과 근면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문화가 있다면 애팔라치안 산맥의 문화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백인층의 애환을 담은 것이 많습니다. 소위 말하는 ‘Redneck’(일만 열심히 하는 고집불통 시골 백인) 문화입니다. ‘힐빌리의 노래’는 켄터키 산골에서 자라면서 가난과 세대를 대물림한 알콜과 마약중독의 가정에서 예일대 법대를 다니게 된 주인공이 미래를 고민하면서도 불행한 과거로 돌아가서 자기의 도리를 다하려고 몸부림치는 내용을 다룹니다.
인상깊은 것은 취업을 위해 미래 인맥을 맺기에 좋은 디너파티가 열려 초대받았는데 너무 많은 수저와 포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라 당황해 하는 장면과 포도주를 어떤 것 마시겠는지 묻는 질문에 답을 못해 난감해 하는 장면입니다. 결국 같은 테이블에 있던 동부 엘리트 상류층들에게 가진 것 없는 집안 출신인 것 그리고 자기 엄마를 조롱하는 발언을 듣다 참지못해 “이 방에 있는 너희 모두 보다 내 엄마가 더 똑똑하다” 소리지르며 그 자리를 뜹니다. 성공을 위해 자기가 살아온 과거를 조롱하는 인간들에게 비굴하거나 비겁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미국 촌놈’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주고 사랑해서 역경을 이겨내도록 도운 여자친구는 인도 이민자 법대생입니다. 자기 부모가 이민와서 경험한 아픔을 알기 때문에 미국 가난한 집안 남자친구의 아픔과 어려움을 인내하며 품어냅니다.
추수감사절에 이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날이 손자 100일 이라 사진을 찍어 동생들에게 보내고 생각하니 그날이 어머니 돌아가신지 꼭 2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급하게 다시 어머니 기일이라고 동생들에게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답이 왔습니다. “엄마 묘비나 빨리 해!” 만약에 내가 손자 백일 파티는 하면서 어머니 기일을 생각하지 못했다면 동생들에게 면목이 없을 뻔 했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내 아이들은 당연히 할머니들을 생각할 줄 압니다. ‘힐빌리 노래’에서도 망가져 회복이 어려운 가정을 일으켜 세우는 중심은 할머니입니다. 폐렴으로 입원해서 세상 떠날 날 기다리다가 자기마저 없어지면 남은 손자를 지켜낼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집으로 돌아와 머리는 비상한데 가난해서 공부 제대로 할 수 없어 사고만 치는 손자를 호되게 살려냅니다.
가족은 물론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사람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리고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해야 사람입니다. 한달 전에 로드 아이랜드에 있는 작은 섬 갈릴리를 다녀왔습니다. 다리 넘어 있는 섬이 예루살렘입니다. 40년전 신학생 때 그곳에 가면 길가 상점 가자미 튀김 한마리가 $1이었습니다. 그맛이 생각나서 찾아갔는데 코로나로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더군요. 뉴욕에 와서 제가 신학교 다닐때 법대를 다녔던 변호사로 크게 성공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첫 대화가 밤늦게 작은 전기밥솥에 라면 끓여먹던 이야기였습니다. 신문에 보니 그분이 앤디 킴 연방하원의원 선거 후원회장을 했더군요. 알고보니 젊은 코리언들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나이들어 공부하면서 견뎌내야 했던 인종차별은 말할 것 없고 미국사회 저변에 깔린 각종 차별 현실 뼈아프고 눈물나게 겪어내야 했기에 꿈을 가진 젊은이들을 돕는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마약중독자입니다.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엄마에게 아들은 자기가 쓴 노트를 심심할 때 읽으라고 줍니다. 거기에는 수학문제와 재미나는 농담 그리고 성경구절이 적혀있습니다. 엄마가 성경말씀을 읽고 살기를 바래서입니다. 자기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한심한 엄마입니다. 그런데 아들은 엄마가 계속 삶을 포기하려 하니까 소리지릅니다. “엄마 견뎌내 제발! 제발 좀 살아줘!” 서로 아픔과 고통을 주는 가족이지만 그들 속에 흐르는, 서로 지켜주어야 한다는 가족 의식이 있고 부모가 모자라기에 일찍 어른 된 아이들의 아픔 그리고 성숙함이 있더군요. 결국 성공하고 살아냅니다.
아기 예수 기다리는 대강절입니다. 우리네 어떤 삶의 현실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 사랑, 기쁨, 평화로 아기 예수를 어김없이 보내십니다. 예수님 계시니 견뎌내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더욱 사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