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동북부지역총회에서 뉴욕연회와 뉴잉글랜드연회가 한 ‘구역’(Boundary)이 되었습니다. 통합한 것은 아니고 감독 한 사람이 두 연회를 책임지게 된 것입니다. 이 구역을 지난 8년간 뉴욕연회를 이끌었던 비커튼 감독이 앞으로 4년 담당하고 은퇴합니다. 뉴욕연회는 뉴욕시를 중심으로 한 뉴욕주 일부와 코네티커트주 일부이지만 뉴잉글랜드연회는 보스턴을 중심으로 뉴햄프셔, 메인, 로드아일랜드, 매사추세츠, 버몬트, 동부 코네티컷까지 6개 주를 포함합니다. 동북부 10개 연회가 모두 5개 구역이 되면서 한 감독이 두 연회를 관리하게 된 이유는 교세의 감소로 인한 재정 현실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로 어려운 현실로 인해 새롭게 되는 기회를 찾기도 합니다.
이번에 한 구역이 된 뉴욕과 뉴잉글랜드연회를 임시로 ‘New Hope’ 구역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저는 환영하고 기대합니다. 저에게 보스턴은 신학 공부의 기쁨과 목회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준 곳입니다. 보스톤신학대학원에 79년도 입학했고 80년도 보스턴 한인교회에서 전도사부터 부목사까지 3년간 사역했습니다. 올해 은퇴한 뉴저지연회 죤 숄 감독이 신학교 1년 선배인데 이번 지역총회에서 만나 우리가 공유하는 교수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참 좋은 분들에게서 배운 것을 감사했습니다.
‘새 희망’(New Hope), 어떤 희망이 가능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연회에 속한 한인목사들이 120여 명이 됩니다. 대부분 한인교회가 아니라 cross-cultural ministry(다인종 목회)를 합니다. 이런 현상은 어느 교단에도 볼 수 없고 연합감리교회만이 가능합니다. 한인 목사들 거의 모두가 백인교회에서 목회합니다. 차별하는 인종을 차별당하는 인종이 하나님 사랑과 예수 십자가 은혜 목회를 책임지고 있는 것입니다.
6년 전 뉴욕연회 리더들과 한국 부평감리교회를 방문했을 때 새벽기도의 열기와 극진한 손님 대접에 감동을 받은 어느 감리사가 “어디에서 이런 것을 배웠는가?” 질문했습니다. 그 때 권사 한 분이 “한국교회는 당신들이 보낸 선교사들을 통해 배웠다”고 답했습니다. 그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뉴욕연회 리더들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비커튼 감독께서 미국으로 돌아오자 마자 맨해튼 현재 우리 교회 ‘주빌리선교센타’를 매각하지 말고 후러싱제일교회에 넘기라고 연회이사회에 통보했습니다.
연합감리교회는 많은 부분이 연회, 지역총회와 총회라는 회의를 통해 결정됩니다. 그러니 교단에 리더로 나서는 사람들은 대부분 회의 절차를 잘 알고 정치적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한인교회는 이 분야에 미약합니다. 그렇지만 한인교회는 어려워도 믿음 가지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강건하게 세우고 성도들을 복음으로 온전케 하는 그 사명만큼은 열심히 잘합니다. 그래서 보게 되는 현상은 교세가 약한 연회에서 큰 교회들은 대부분 한인교회라는 것입니다. 뉴욕연회만이 아니라 동북부 전체 10개 연회 가운데 후러싱제일교회가 차지하는 위치가 중요한 것도 그것입니다. 무엇보다 한인 목사들이 미국인 교회 목회를 잘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단 정치 잘하는 리더들은 많이 배출하지 못했지만 교회는 잘 지켰다는 것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뉴욕이나 뉴잉글랜드연회 모두 한 목회자가 평균적으로 두 교회를 목회합니다. 그 교회들 대부분이 주일 평균 예배 출석이 20명 미만입니다. 그리고 요즘에 목사 안수를 받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목사 되겠다고 오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한인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인 교회 목회 자리가 열릴 때마다 한인 목사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은 당연히 미국에 잘 살기 위해서 왔습니다. 미국이 잘되도록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 길은 예수 잘 믿어 하나님 축복하시는 나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 증거에 있어서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성서적 구원관을 가지는 교단이 연합감리교회입니다. 예수 믿어 개인이 구원받는 구원의 확신만이 아니라 사회와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 나라 가치관으로 변화되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한인들이 중심적으로 쓰임 받고 있다는 것이 자랑이면서 희망입니다.
희망은 찾는 것만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아픔과 어려움을 허락하실 때는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시대에 개혁이 필요할 때 루터와 칼뱅이 그리고 웨슬리가 외쳤던 ‘오직 말씀’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우리가 다시 힘차게 외쳐야 할 때가 바로 이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