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에서 한국에서 오신 교계 어른이 “요즘 젊은 목사들 성경을 읽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목회자 훈련모임에서 목회를 막 시작하는 한 젊은 목사가 “나는 성경을 한번 통독하지 않은 목사는 목회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경하게 발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같은 내용의 말이지만 하나는 어른이 젊은 목회자들에게 주는 사랑의 회초리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젊은이 스스로 의로움에 충만한 말이었습니다. 선배 어른이 그런 말씀을 하실 때 옆에 있던 부목사에게 “나도 젊은 목사에 속하나?” 그랬더니 단 한마디로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성경 읽지 않는 젊은 목사가 아니라는 것인지 젊지 않다는 것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대단하게 여기는 것 같은 젊은 목사에게 제가 참지 못하고 “그런 엄청난 말을 함부로 하는 그대는 누구인가?”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진정 중요한 질문은 “성경 많이 읽고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들도 왜 그렇게 문제가 많을까?”입니다. 마크 트웨인이 “당신이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성경이 당신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가 중요하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다는 내가 주체가 되면 스스로 거룩하다고 착각하는 바리새인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나를 읽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내 인격과 존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는 것은 시간이 길다거나 목소리가 크다거나 말이 많다거나가 중요한 것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내가 하나님 마음을 내 마음에 담고 예수님 생각이 내 삶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참 기도입니다. 성경 많이 읽고 기도 많이 해야합니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기에 억지로라도 ‘틀’과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 훈련모임 강사 한 분이 ‘내가 읽기 싫다고 해도 목사는 설교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몸을 때려 가면서도 성경을 많이 그리고 깊이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저도 강의를 하면서 “주일날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성도들의 말씀 목마름을 생각해서 많이 그리고 깊이 읽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벌써 10여년 전 연합감리교 한인교회 큐티책 ‘기쁨의 언덕으로’를 시작할 때 제가 당시 편집자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설명 많이 들어가는 것 하지 말고 성경 말씀 자체에 집중하도록 편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사람들 글 읽으면서 감동받는 것보다 스스로 성경 속으로 들어가도록 도우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목사들에게 가장 큰 위험이 설교를 위해서만 성경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도 하나님의 말씀이 절실한 목마른 죄인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생명수를 마셔야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설교세미나에서 많이 하는 말도 “목회 잘하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고 교인들에게 감동주려고 애쓰는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입니다. 성령이 하셔야 하는 일을 목사가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설교의 중심도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어야 합니다. 누가 목사로서의 저를 평가하면서 기도 많이 하는 신령한 목사라거나 성경 많이 읽는 신비한 목사라는 말 농담으로도 하는 것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를 할 때나 목회를 하면서 내가 우리 교회 평신도들 보다 영적으로나 성경지식적으로 높은 경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상 부족한 나를 설교자로 세워주시고 목사로 쓰임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나를 목사로 인정해 주는 교인들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습니다. 보수 장로교 문화는 변질된 이 시대가 아닌 순수했던 그 옛날 신앙으로 돌아가는 것을 많이 강조합니다. 보다 진보적인 교회들은 개혁되고 변화되어야 하는 신앙을 많이 강조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보수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나 진보주의자(radical)는 같은 어원을 가진 신앙의 뿌리(root)에 근거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 그 뿌리에 근거하는 신앙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진정한 보수신앙과 진보신앙은 예수 말씀 중심에 있어서 맥을 같이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신앙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말씀을 생명과 사랑을 상실한 율법화 시키려는 바리새적 신앙인들입니다. 동시에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 자기 생각과 뜻을 앞세우는 교만한 자유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의 중심에는 예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신격화하는 견고한 교만의 진이 자리 잡고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사랑 초심으로 돌아가고 살아있는 하나님 말씀 성경으로 돌아가며 십자가 은혜 구원의 감격으로 돌아가 온전한 거룩함의 성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