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첫 설교를 1979년도 보스톤 성요한 교회에서 했습니다. 설교를 하면서 다리를 너무 떨어 뒤에 있던 성가대원들이 계속 웃는 것이 느껴졌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도 광주항쟁이 일어나면서 당시 홍근수 목사님이 계셨던 보스톤한인교회에 갔는데 어린 나를 매달 한번씩 주일예배 설교를 하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보스톤한인교회에서 했던 첫 설교를 기억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너희도 가려느냐?”는 예수의 질문에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답하는 베드로 고백 본문이었습니다.
그 교회 개척자는 연세대 총장을 지내신 박대선 감독님이셨습니다. 당대 최고의 쟁쟁한 설교자들의 설교와 함께 24살의 어린 부목사의 것을 홍목사님이 교회 40주년 기념 ‘보스톤 강단’ 설교집에 넣어 주셨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보니까 첫 설교를 한지 43년이 지났는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설교를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 성향으로 봐서는 수십 번도 더 했을 유명한 본문인데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요즘 교단도 난리이고 교회들이 많이 어렵다 보니 목사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묻습니다. 제 대답은 “목사의 기본은 설교이니 강단목회를 강화합시다.”입니다. 아직도 보수성향이 강한 남부에서는 목사를 ‘preacher’(설교자)라 부릅니다. 언제부터인지 설교가 엔터테인먼트(Eentertainment)화 되기도 하고 유튜브 조횟수로 유명세가 평가되는 세상이 되어 설교가 상품화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오는 8월 초에 올해 보스톤 신대원에서 설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고요한 목사님을 주강사로 “설교와 목회 새판 짜기”(Re-setting & Re-formatting) 세미나를 하기로 했습니다. 고목사님의 발표를 보완해 주기 위해 대 선배 박사인 임찬순 목사님이 강사로 수고하시고 지난 근 3개월동안 저와 매주 월요일 아침 교회력 설교를 함께 준비했던 목사들(이요섭, 김성은, 이기일)이 목회이야기 나눔을 합니다. 저는 이분들과 설교 준비를 하면서 각 사람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의 메세지가 다양함에 놀랐습니다. 무엇보다 진실된 고민을 솔직하게 나눌 수 있어서 도전과 배움이 컸습니다.
며칠 전 예일대학 뉴헤이븐스 연합감리교회 최대호 목사님이 오셔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제가 설교를 하면 뭐가 틀렸는지 즉각 메시지가 와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는데 지금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세계 최고 일류 대학에서 첫 목회 너무 잘하려고 애를 쓰기에 제가 그랬습니다. “교회 부흥시키려 애쓰지 말아요. 지금은 최목사님이 좋은 설교자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제 경험으로 보니 어설픈 것 같지만 진솔한 고민을 하면서 설교를 하는 목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목회자로 쓰임 받는데, 매너와 제스처로 잘하려는 목사는 시간이 지나도 발전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무엇보다 바탕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목사들일수록 과장된 영적 능력을 과시하려고 하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많이 동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목사들에게 교회 부흥시키는 것보다 좋은 목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며칠 전 뉴욕연회가 회복과 부흥을 위해 시작하는 ‘연합교구’ 리더들 모임에서 한마디 했습니다. “미국교회도 한인교회처럼 새벽기도를 하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해결책을 찾으려 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생업을 위해 땀 흘리는 만큼이라도 목회를 열심히 하는 ‘노동윤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목회보다 다른 일이 우선이 되는 우리 교단의 문화로는 교회 부흥 어렵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늙은 꼰대라고 하는 것 잘 압니다. 제가 시카고에서 목회 할 때 박이섭 목사님이 젊은 목사들만 만나면 “이 사람들아, 교인들 땀 흘려 세탁소 일하는 것 만큼은 목회를 해야지! 새벽에 무릎 꿇고 기도하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당시에는 듣기 싫었지만 그 말씀이 약이 되었습니다.
제 요즘 관심은 코로나 이후 교회가 회복과 부흥을 이루는 것이고 이를 위해 기도와 말씀으로 다시 믿음의 기초를 세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