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시카고 중앙갈릴리연합감리교회 통합 1주년 기념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중앙교회는 김성찬 목사님 계실 때 전성기였고 갈릴리교회는 이경희 목사님이 개척하시고 은퇴하기까지 평생 헌신한 교회입니다. 가장 가깝게 지내던 선배 목사님들이신지라 교인들도 가까운 분들이 많은데 40년 세월 흘러 당시 3-40대 교인들이 이제 7-80대가 되셨습니다.
1년 전 중앙과 갈릴리가 통합하면서 후러싱제일교회 20여 년 전 부목사를 지낸 차영섭 목사가 담임이 되어서 목회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연세 많으신 장로님 한 분이 “김목사님 혈기 왕성했던 20대가 지금도 생생해요” 하시면서 빨리 지나가 버린 세월을 아쉬워하셨습니다.

시카고는 제 고향입니다. 1973년 11월 15일 김포를 떠나 일본 나리타와 알래스카 앵커리지 공항을 경유하고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내렸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후 다음 주부터 파트타임 일을 해서 시간당 50전 받다가 나중에 $1 받게 되었을 때 천하 성공한 기분이었습니다.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흑인 지역에서 광고 전단지 돌리는 일, 식품점 쓰레기 담당, 리커 스토어 창고 담당으로 시작해서 대학생 때는 그 옛날 시간당 $10 받는 UPS 트럭에서 짐 내리는 일에 뽑혀 돈 버는 재미에 빠져 결국 한 학기 전공 과목 낙제를 하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었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 1979년에 입학한 후는 전혀 다른 인생을 지난 세월 살았습니다. 보스턴에서 부목사 4년 후 시카고에서 대학생 청년 목회로 시작해서 17년 목회, 애틀란타에서 18년 그리고 지난 10년 뉴욕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집회 기간 40여 년 전 제가 목회할 때 가장 어렸던 교인이 왔기에 “혜영아 너 몇 살이니?” 물었습니다. “목사님, 저 권사예요! 그리고 저 62살이예요” 하는데 제 눈에는 아직도 대학교 1학년 이었습니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던 다른 교인들이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가장 죄송한 것이 “저 기억하시죠?” 하는데 기억을 못해서 보청기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청기만 뺐다 꼈다 하고 얼버무리는 내가 참 민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첫날 집회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저와 악수를 하고 바로 어느 분이 넘어지셨습니다. 낮에 투석을 하시고는 기운이 없는데 집회 참석을 한 것입니다. 무슨 일인지 담임목사에게 물어보니 집회를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아픈 것을 걱정하는데 그분은 아파도 은혜 받아서 행복하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40여 년 전 갈릴리교회 창립 예배를 기억합니다. 조영남씨가 특송을 했고 이경희 목사님이 물 찬 제비처럼 성가대 지휘를 하셨습니다. 그때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말을 못하고 우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중앙교회 예배당 구입하고 김성찬 목사님이 교회를 보여주면서 자랑할 때 함께 기뻐하면서도 얼마나 부러웠는지 왜 나는 언제나 미국교회 셋방살이 그만하고 자기 교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냐고 울면서 그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하니 마찬가지로 눈물을 닦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아직 예수님 시퍼렇게 살아 계셔서 지금도 구원하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말씀과 성령이 임하면 늙은이가 꿈을 꾼다고 했으니 교회 부흥의 꿈을 꾸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인들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옛날 이야기를 생생하게 기억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자신에게 지난 세월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후러싱제일교회 지난 50년 하나님 사랑과 은혜는 얼마나 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