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세상 사는 비결을 말하면서 ‘해녀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물을 무서워하면 안되고 물에 들어가야 무엇을 건져 내어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에 들어가기 위해서 해녀는 숨을 참을 줄 아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참기만 하면 숨을 못 쉬어 질식할 위험이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 숨을 쉴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중세 신비주의자 루미의 말입니다. “세상과 싸우려 하지 말고 네 자신의 에고를 죽여라” 그런데 사막의 수도승들 처럼 속세를 떠나 자기 수양에 정진하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시장 바닥과 같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말입니다. 교만하고 이기적인 에고는 죽어야 하지만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나 자신의 존엄은 지켜내야 합니다.
어느 교인이 자신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너무 참지 말라고 했습니다. 못 참아 숨을 못 쉬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사도 사람입니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목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장로도 목사도 당연히 사람입니다. 목사 노릇하면서 단 한번도 내가 성자 비슷한 인간이라는 생각 한 적이 없습니다. 노력은 물론 바라지도 않습니다. 나는 평생 예수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내가 선한 목자라는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을 따르는 양입니다. 그저 교인들에게 함께 그 주님 따라가자고 말하는 사명에 최선 다할 뿐입니다.
못되고 못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못된 짓을 하면서도 잘하는 줄 착각합니다. 신앙으로 살려고 애쓰는 분들은 조금만 자기 잘못이 있어도 예수님 말씀 따라 살지 못함에 마음 아파합니다. 못된 사람들은 “왼 뺨을 때리면 오른 뺨도 내어주라”는 예수님 이런 말씀 고민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따라 살려는 사람들이나 고민합니다.
80년대 후반에 시카고대학에서 교회 개척했을 때 입니다. 주일 오후인데 전도사가 교회 구석에서 서럽게 울고 있기에 왜 그러느냐 했더니 아이 하나가 도너스를 부시고 다니면서 친교실 카페트에 계속 뿌리기에 그러지 말라고 하고 같이 청소하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오더니 “너는 청소하지 않아도 돼. 전도사들이 청소하는거야”하면서 데리고 가더랍니다. 교회에서는 못된 짓 함부로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가능한 것은 어쩌면 보통 교회에서는 가만히 놔두니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주시는 성령의 은사는 주의 몸된 교회 덕을 세워 강건케 하는 목적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못된 교인이나 못난 목사나 모두 하나님 사랑과 예수님 십자가 보혈의 은혜에 힘입어 사는 곳입니다. 다만 교회 존재 목적을 모르고 함부로 못된 일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은 허락될 수 없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신앙생활 잘하려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교회 생활할 수 있는 교회를 지키는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믿음으로 지켜내야 합니다.
요즘 우리가 속한 교단의 문제가 미국 언론에 자주 오릅니다. 참 어려운 때입니다. 얼마 전에 후러싱제일교회 담임목사로서 현재 교단에 남을 것이냐 나갈 것이냐 밝히라고 강요 받았습니다. 제 대답은 “나는 교회가 결정한 다음에 밝힐 것이다”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교인들이 담임목사 입장에 따라 영향 받지 말고 각자의 신앙 양심에 따라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 제가 교단을 나가서 교회 예배당 팔아 사유화 할 것이라는 소문에도 아니라는 해명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법으로도, 양심으로도, 상식으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 시시합니다. 시시한 사람들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가 예수 잘 믿어 신명나게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