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이 나오는 말이 코로나 후유증입니다. 1년반 전 시작되었을 때는 긴장과 불안이 많았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교회도 ‘위드 코로나’를 말하며 열심히 잘해서 이겨내려고 하는 의지들도 보였지만 너무 시간이 오래되면서 지치고 질려버리는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보통 위기의 때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잘 인내로 견뎌내는데, 코로나 사태는 오히려 젊은이들이 잘 이겨내고 어린이들과 노인층이 가장 아파하고 어려워합니다.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이용한 활동이 활발한데, 노인층은 갇혀 지내는 답답한 시간이 오래되면서 몸과 마음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교회들도 생업의 어려움과 더불어 헌금이 줄어든 것은 말할 것 없지만 교인들이 겪는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으로 인한 문제들이 이제 표면화되곤 합니다.
며칠 전 목회실 회의에서 ‘Non-Doing’의 중요성을 다시 말했습니다. 하지 않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물이 흐르듯 가는 것입니다. 물에 빠지면 당황해서 허둥거리면 안되고 가만히 물의 흐름을 판단해야 하는 것처럼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때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느끼는 시간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무리하게 뭘 해내려고 하고 몸부림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사역도 그렇습니다. 내년 인선을 앞두고 어떤 분들은 지난 1년간 아무 일도 제대로 못했다는 자책감을 가지더군요. 아닙니다. 코로나 난리 판에 뭘 많이 할 수도 없었지만 때로 가만히 그 자리에 존재함이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큰 바위는 가만히 있지만 그 주변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바라보고 힘을 얻습니다. 그렇게 때로는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시기만해도 든든합니다. 예수님은 열매 맺는 비결로 “내 안에 거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행위보다 존재가 우선입니다. 존재에 따라 행위의 열매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생업의 어려움이 있으니 헌금 드리기 어렵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오래전 캐나다 토론토 연합교회 이상철 목사님은 직장을 잃거나 먹고 살기 어려워진 교인들에게 교회가 십일조 돌려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설교를 해서 동네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목사들은 그러면 교회 망한다느니 믿음이 없는 목사라고 비난하고 그랬지만 그 어른의 마음은 교인들의 어려움을 교회가 잘 품어내지 못하는 것이 민망해서 그리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코로나 걱정되어 예배당에 오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예배 드리는 것도 괜찮습니다. 코로나 감염 걱정하는 것 잘하는 것입니다.
40여년 전에 이상철 목사님을 모시고 시카고 아사원 자장면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 식사기도하라 하시기에 진지하게 길게 했더니 “하나님이 의붓아버지도 아닌데, 왜 그리 쩔쩔매면서 고맙다고 여러번 말해.”하셨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처럼 긴 하얀 수염에 따뜻하고 인자함이 가득하셨던 어른이셨습니다. 이목사님의 장인 김재준 목사님과 문익환 목사님의 아버지 문재린목사님이 옛날 토론토 연합교회 계셨었습니다. 제게 부목사로 오라고 하셔서 마음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은퇴를 하신다고 하시기에 그러면 안간다 했더니 “아이고 아직 김목사 철이 없구나. 나 은퇴해도 예수님은 이 교회에 그대로 계신다.”하시며 웃으셨습니다. 80년대만해도 만주벌판에서 조국의 해방을 꿈꾸며 고난의 역사를 지켜냈던 어른들이 미국과 캐나다 북미주 이민교회를 이끄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그런 큰 바위같은 어른들이 그립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함이 있고 자연스러움이 있습니다. 억지스럽고 무리하거나 무례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대해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주인이시니 그분이 뜻하시고 이루십니다. 사람이 자기가 주인되려고 하니 무리수를 두고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내가 뭘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능력주심에 우리는 겸손하게 순종할 뿐입니다. 잘하거나 못하거나 나를 쓰시고자 하시면 감사하고 겸손하게 섬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