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감독이 1980년에 ‘카게무샤’라는 일본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전쟁 중에 대장군이 죽으니 군영에 들어온 도둑이 비슷하게 생겼기에 그를 대장군의 자리에 앉히는 내용입니다. 적군은 대장군의 자리를 향해 화살을 날립니다. 그는 살려고 계속 도망갑니다. 도망가면 다시 끌려와서 그 자리에 앉는 일을 반복하던 어느 순간 자기가 대장군의 자리에 없으면 군사들이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을 보고 평생 쓸모 없는 인생 살았던 자기도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음 깨달아 대장군의 자리를 지켜내는 내용입니다.
저는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하기 싫으면 목사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신학대학원 2학년때 감리사가 시카고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목사안수 과정심사였습니다. 정신분석 테스트 결과 제게 남성우월적인 문화가 있어서 미국인 교회 파송이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다고 하면서 마지막 질문이 “연합감리교 목사가 안된다면 너는 어찌할 것인가?”였습니다. 제 대답은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나를 쓸모있다고 여기는 곳에서 목회할 것이다.”였습니다. 그런데도 통과되어서 철없는 나이에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가끔 ‘카게무샤’ 생각을 합니다. 프랑스 혁명 일어나기 전 탄압정책을 썼던 루이 왕 14세는 자격이 없는 가짜 왕이라는 소문을 덮으려고 자신을 신격화하는 작업을 하던 중 철저한 카톨릭 수호자라는 것 교황청에 보이려고 개신교를 탄압했습니다. 가짜들은 감추려고 종교심으로 위장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단이나 사이비가 탁월하게 경건한 흉내를 내고 모든 것 다 잘하는 것 같이 보이려 하고 영적인 권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보면 실력과 자격을 논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는 경우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들어 쓰심으로 사람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이 우선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순종이었습니다.
목사를 포함 교회 어느 직분도 오직 주님 뜻에 따라 쓰임 받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택함 받게 되면 제대로 그리 되지 못한다는 부끄러움 때문에 오직 은혜를 의지해서 최선 다할 뿐입니다. 초대교회 가장 큰 문제가 특별한 영적인 능력과 체험을 자랑한 성령파, 지식이 있다고 교만했던 자유주의자들, 유대 문화 우월주의자들과 복음의 근간을 흔드는 율법주의자와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여전히 이런 문제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일 잘하는(ability) 사람들이 아니라 주님 은혜 감사해서 자기를 기쁨으로 내어놓는(availability)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마르다가 아니라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예배드리기를 사모하고 말씀 듣기를 기뻐하는 은혜에 목마른 가난한 심령입니다. 교회는 주님이 주인이시고 성령이 일하시는 곳이기에 사람이 자기 뜻 이루려고 자기 열심 내어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달려든 것은 자기들 기득권이 위협받았다 여겨 자기들이 쌓아놓은 것들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건축 못하게 하시고 모세로 가나안 땅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대단한 실력이 있어도 자기에게 주어진 분량의 몫 만큼 쓰임 받고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위대한 일’(significance)은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시는 몫 입니다. 더도 덜도 아닌 내가 감당해야 할 분량에 감사하고 최선 다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섬기는 일에 쓰임 받음에 감사함으로 순종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단 한번도 내가 교인들 보다 믿음이 좋고 선하고 거룩해서 목사 노릇한다고 여긴 적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같은 인간 쓸모 있다고 여겨 주시니 성령의 도우심 믿고 그저 감사함과 두려움으로 내 자리 지킬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