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ations of the Heart’(마음의 묵상)이란 책에서 Howard Thurman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한없이 작은 우리네 삶, 그러나 너무나 큰 문제들 – 주님 제단 앞에 내려놓습니다. 당신 침묵의 성전에서 흐르는 고요함이 우리를 밀쳐냅니다. 어떤 이들은 기다림을 잘 지켜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당신 소리없는 성령의 들어오심을 거부합니다. 어떤 이들은 생각들의 중심을 당신께 드릴 의지가 부족합니다. 혼돈이 너무 크고, 어디에서 무엇을 잡아야 할지 알수가 없습니다. ….여러날 번잡한 꿈들로 가득한 밤들과 계속되는 뒤척거림. 우리가 알고있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 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작은 삶들, 우리의 너무 큰 문제들- 이 모든 것 주님의 제단 앞에 내려놓습니다“
며칠 전에 교회 마당에서 수술을 앞둔 권사님은 의자에 앉아 계시고 부목사들과 함께 기도하는 장면을 제 아이들이 보고 “아빠, 아까 파킹장에서 뭐했어?”라고 묻습니다. “권사님 한 분이 내일 수술하신다 해서 잘 고쳐지도록 기도한거야”했더니 마스크를 쓰고 둘러 서서 기도하는 그 광경이 신기했는지 더 이상 아무 말을 안하더군요. 아이들 보기에는 아빠가 뭔가 영적으로 있어 보였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제대로 된 것 없다는 것 잘 압니다. 하나님의 것을 담아내야 하는 그릇이어야 하는데 여기 저기 깨지고 못나게 자국난 것이 볼품 없게 많이 남아있는 질그릇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약해집니다. 며칠 전 교단 관계자의 이야기가 교회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교인들은 말 할 것 없고, 목사들도 정신적 건강이 많이들 허약해졌다고 걱정을 합니다. 저도 다 잘할 것 같고 어떤 상황에서도 굳건히 서 있을 것 같지만, 오직 은혜 아니면 서지 못한다는 노래 그대로 입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김현승 시인의 시가 절실합니다. 잘해야 하고 잘 할 수 있다는 끊임 없는 자기최면, 만트라의 약발 가지고는 살아내기 어렵습니다. 이제 더욱 주님 제단에 흐르는 샘물같은 생명수를 갈망할 때입니다.
며칠 전 읽은 어느 글에 보니 사람들은 아픔이 있으면 빨리 안 아파지기를 바라지만 진정 성숙해 지려면 더 아픔에 깊이 머물러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아픔은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기는 미국 문화속에 유독 진통제 광고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픔 속에 제대로 들어갔다 나와야 살아 있음의 고귀함이 절실해 진다는 것입니다. 땅에 제대로 떨어져봐야 인생 새롭게 살 수 있다 하면서 너무 성급하게 쉽게 서둘러 올라가지 말라합니다. 주님 십자가는 가을에는 더 아픔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더 정직하게 그곳에 머물러 있으라 말씀해 주십니다.
그 어느 것도 내 인생 영원한 것 없습니다. 주님 은혜와 사랑, 그분의 말씀만이 영원한 것을 약속합니다. 가을에 더 깊고 넓고 높게 주님 충만한 은혜를 사모하고 체험할 수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