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렸을 때 미국에 유학가신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호구조사하면서 집안에 대학교 졸업한 사람이 있는지 물을 때 우리 반에서 손을 번쩍 드는 것이 항상 나혼자였기에 큰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당시 의정부는 서울을 보호하는 수도방어선의 북방이었고, 자랄 때 보면 미군부대와 관계되어 생업하는 사람들이 잘 살았고, 동네 형들 가운데는 미군 PX로 가는 ‘뜨리쿼터’ 트럭에 뛰어올라가 박스를 밖으로 던지는 절도범, 시장 깡패, 술팔고 몸파는 여자들을 등쳐먹는 양아치 등 각양각색의 못난 인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그런 동네에서 저는 천하에 가장 좋은 의정부중앙감리교회에 다닌다는 것과 대학교 정도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는 미국에 유학가셨다는 것이 나를 지켜주었던 대단한 빽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영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여서 문학잡지도 만들고 말씀하실 때는 영어도 섞어서 말씀 하시니 정말 시골 농업중학교 다니던 저는 일찍 미국에 가셔서 떨어져 살았지만 아버지를 엄청 존경했습니다. 반면에 어머니는 약국을 운영한다고 하셨지만, 서울대 약대를 나오고 의정부에서 교편을 잡은 이모의 라이센스를 대신 가지고 장사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몸을 팔아 먹고 살아야 하는 젊은 여자들이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 한참이나 목놓아 울면 같이 울어주셨습니다. 어떤 날은 경찰서에 불려가셨는데 쥐약을 사간 사람이 세상 떠난 날이면 더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서러움 당하고 무시당하는 여자들을 잘 돌보시기도 했지만 육영수 여사가 하던 재건국민부인회인지 거기 간부일 하시면서 동네에서 힘도 쓰시고 그랬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문화적으로 많이 뒤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같이 산 시간은 짧았지만 한 말씀하시면 평생 기억될 명언을 주시는데, 어머니는 야단을 많이 치셨음에도 불구하고 명언을 주신 적이 별로 없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명언 한 두 가지가 있다면 어머니주일 설교 준비하고 있으면 일부러 지나가시면서 “지 어미한테나 잘하지”하셨고, 목사안수 받는 날 “꽁짜 좋아하는 목사되지 마라”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그리고 치매 기운이 있으셨지만 제 큰 딸이 결혼한다고 했더니 사위가 어떤 인간인지 물으시기에 학벌이 어떻고 생긴 것이 어떻고 말씀드렸더니 한마디 하셨습니다. “사람 착하면 되는거다”
그런데 제가 철이 들고 보니 학교 제대로 다니지 않으신 어머니가 집을 지키셨으며,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우리 삼형제 지켜내셨습니다. 아버지는 설교하시고 이상적인 생각을 글로 쓰셨지만 어머니는 동네 억울함 당하는 여자들 끌어안고 우셨고, 이모가 결혼했을 때 이모부가 데리고 들어온 전처의 아들들이 이모에게서 구박당하면 “이년아 너 예수믿는 년이 그러면 벌받는다. 저 어린것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리 못되게 하냐” 야단치시면서 사촌 형들을 품어주셨습니다. 그러면 서울대학 나온 이모는 고등학교도 다닌 것 같지 않으신 어머니 앞에서 소리내어 울면서 “언니 나도 알아 그런데 미운 것 어떡해!”했습니다. 먼 훗날 이모부 돌아가시고 이모는 재산을 자신이 낳은 자식이나 들어온 자식이나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머니 이야기는 교회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목회하면서 보니 제 어머니 같은 교인들의 교회사랑과 성도들 돌봄이 교회를 지켜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도 보게 되는 것은 저는 말하고 글로 그리고 기도와 생각으로 교회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면, 교인들은 물론 목회스텝들이 실제적인 모든 일을 다 감당했습니다. 교회가 세워져 있으려면 빙산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해결해야 하는 밑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훨씬 많습니다. 코로나 이전보다 더 힘들고 어렵게 목회실은 돌아가고 있습니다. 교인들도 많이 어렵지만,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다. 지난 주일에 보니 장로님 한 분이 “평생 우편으로 헌금을 보내기는 처음입니다”라고 쓰셨더군요. 주중에 가지고 오셔서 헌금 드리는 분들도 계시고, 온라인으로도 하고 계십니다. 모두 신앙을 지켜내기 위해 최고 최선의 노력을 하십니다.
코로나 사태의 끝이 아직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많이 힘듭니다. 그런데 자라온 지난날 나름대로 인생 바닥을 경험했던 것들이 세상의 현실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뭘 할 수 없으니 더욱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는 큰 어려움이 있을 때 더욱 강하셨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