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김정호

한동안 ‘가정은 교회처럼 교회는 가정처럼’이란 말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이라는 것이 예수님이 주인되는 교회처럼 되여야 하고 교회가 사랑으로 행복한 가정처럼 되어야지 그렇지않고 허구헌날 사랑해야 할 가족을 아프게하고 상처주는 콩가루 집안이 되고 모이면 싸우고 갈라지는 교회처럼 되어버리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교회 모두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야 사랑이 가능합니다.

유대랍비 브리크너는 결혼의 성공이 내게 꼭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사람에게 꼭 맞는 사람이 서로 되어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만 많은 경우 자기 자신을 위한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 사랑일 수 있습니다. 어떤때 이것이 부부간에도 부모자녀간에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명분아래 상대방을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칼릴 지브란이 쓴 ‘인간 예수’에 보면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은 자기자신들을 위해 너를 사랑하지만 나는 너를 위해 너를 사랑한다.”(Others love you for themselves. But I love you for you.)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너를 위해 너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어린왕자의 작가 쌩 땍쥐베르도 사랑에 대해 말하기를 “어쩌면 사랑은 당신이 최고의 당신을 찾아가는 길에 부드럽게 옆에서 손을 잡고 동행하는 것이리라.”고 했습니다. 부부간에도 부모와 자녀간에도 이런 사랑이 있으면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가정과 교회는 사랑을 배우는 학교가 되어야합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서로를 상처주는 곳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참 사랑은 예수님에게서 배워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잘못 배운 것들 버리고 내려놓아야합니다. 인생 가장 큰 후회는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해야 하는데 상처를 주는 일을 열심히 했다면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심판이 두려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심한 책망을 하시는 말 가운데 어린아이들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에 대한 것만큼 큰 것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연자맷돌을 목에 달아 바다에 던져지라고 했습니다. 사랑받고 자라야 할 어린아이들을 상처주고 노엽게 하고 아프게 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신 것입니다.

어느 분이 ‘어린이 날을 축하하며’라고 쓴 글인데 마음에 드는 글이 있습니다. “어린이가 입기 좋은 옷은 비싼 것이 아니라 입고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옷입니다./ 어린이가 살기 좋은 집은 깨끗한 집이 아니라 마음대로 장난할 수 있는 집입니다./ 어린이가 살기 좋은 가정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가정이 아니라 흠이 있어도 이해하고 감싸주는 가정입니다./ 어린이가 다니기 좋은 학교는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경쟁마당이 아니라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놀이마당입니다./ 어린이가 살기 좋은 세상은 지식과 물질이 넘치는 곳이 아니라 사랑하고 꿈꾸기 좋은 세상입니다”

예수님이 주인되는 가정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