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얼마 전 설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고, 중동 평화는 물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을 해서 노벨평화상을 받기를 바란다고 하면서, 보복 정치가 아니라 ‘자비로운 보수’(compassionate conservative)적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분들은 “트럼프는 악한 자이기에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가 하고 있는 보복 정치는 잘못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백인 우월주의가 판을 칠 것과 그로 인한 인종 및 소수 민족 차별이 심화될 것을 우려하며, 뉴욕 한인 커뮤니티의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고, 서류미비자들을 무자비하게 다룰 것에 대한 걱정이 큽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트럼프가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그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한 번도 저 자신을 전적으로 선하고 의로운 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살아오면서 정의의 편에 섰다고 여겼던 적은 많이 있습니다. 군사 독재에 대해서나 인종 차별에 대해서나, 힘없는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목회를 하면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들을 보며, 함부로 사람을 정죄하고 악으로 규정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또한, 선하다고 여겨지는 사람 속에도 악이 있으며, 악하다고 평가되는 사람에게도 선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기에, 제 생각과 뜻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여기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교단 문제도 그렇고, 한국이나 미국의 정치 현실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제 입장이 어느 쪽인지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노력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 편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중도(中道)와 정도(正道)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얼마 전, 중도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자신들만이 정도(the right way)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자기 편을 들지 않는 사람들을 함부로 공격하는 경향이 큽니다.
진정으로 옳은 길을 가려면 “자기도 틀릴 수 있다”는 겸허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람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중도는 단순히 중간(middle way)이 아닙니다. “둘 다 잘못했다”고 하면서 자기만 잘하는 것처럼 말하는 얄미운 양비론도 아닙니다.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인생의 현실 속에서 무엇이 최선의 길인지 찾으려는 사람이 가지는 방법론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중도가 되려면 자기 성찰과 자기 발전을 위한 끊임없는 배움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중도는 정도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정도는 누구나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입니다.
한 개인도 그렇지만, 나라의 일도 흑백으로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분이 “시대 정신을 바르게 읽는 것이 정도(正道)이며, 정도의 드러남이 중도(中道)이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정도를 찾아가는 중도를 위해 한국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본부에서 ‘극한 정치적 갈등 속에 있는 기독 시민을 위한 행동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1.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상대방을 혐오하거나 악마화해서는 안 됩니다.
2. 현실 정치에 과몰입하여 정치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영원에 대한 소망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3.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평화적으로 표현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합시다.
4.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도 이 나라의 한 구성원임을 기억합시다.
5. 근거 없는 음모론을 경계합시다.
6.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고, 약자가 보호받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오늘 교회력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낭떠러지에 밀어 죽이려는 군중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누가복음 4:30).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을 낭떠러지에 몽땅 밀어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욕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 가운데로 지나 자신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직 사람을 살리고 사랑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