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참 의미는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한쪽에선 선물 주고받느라 웃음이 넘치지만, 다른 쪽에선 어둠 속에서 아이들이 울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산타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 여기엔 크리스마스 트리도 없고 불빛도 없어요. 그래도 저는 하늘에 별을 보면 기도해요. 이번 성탄절엔 제발 폭탄이 멈추게 해 주세요.”

그런가 하면 미국 아이들이 보낸 이런 편지가 있습니다. “하늘에 간 엄마를 데려와 주세요.” “엄마가 울지 않게 해 주세요. 아빠 없이 혼자서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는 가족이 전부이기에 ‘사랑을 잃은 아픔’, ‘그리움의 무게’, ‘가족의 소중함’이 절실합니다. 성탄절은 아기 예수에게 선물을 드리는 계절인데 이 땅의 ‘아기 예수’들에게 우리는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을까요?

“나는 이 성탄에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아기 예수께 무엇을 드릴 수 있는가?” 내 주변에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님께서 기뻐하실 성탄의 선물은 화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단지, 정직한 마음, 작은 결단,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저녁에 있을 성탄 축하 발표회를 위해 노래와 율동을 연습하는 어른들을 어제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린이들이 될 수 있는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자 전쟁 피해 지역 어린이 돕기 동전 모으기 얼마나 모일지 모르지만 가난한 과부가 헌금으로 드린 동전에 담긴 마음을 하나님이 아셨다는 것 생각하면 감사가 큽니다.

성탄절 앞두고 진행되는 교회 많은 일들이 가능하기 위해 보이고 보이지 않는 많은 수고와 헌신이 따릅니다. 그런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서로 돕고 함께 하면 신나고 보람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아프게 됩니다. 가정도 그렇지만 교회 역시 눈이 오면 눈을 같이 치우는 사람이 필요하고 부엌은 물론 각종 궂은일 함께 돕는 일손이 절실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가친척 많은 집안의 대가족 명절에, 그 집안 여자들 특별히 며느리들 죽어나는 것처럼 교회도 똑같습니다.

오래전 한국에서 늦게 이민 온 외삼촌이 명절에 가족 모임 후 집 마당에 나가 담배를 피우면서 한숨을 쉬기에 제가 무슨 일 있냐고 했더니 “미국에서는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가야 하는거냐?” 하셨습니다. 외삼촌은 4대 독자였습니다. 그날 남자들은 소파에 앉아서 티비를 보고 여자들은 부엌에 들어가서 일을 하니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셨던 것입니다. “너희 사내놈들은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왜 모일 때마다 여자들만 고생하고 너희들은 놀고 먹냐?” 우리 삼형제는 어머니 말씀에 혼쭐이 나서 부엌에 들어가 일을 하는 척이라도 하는데 삼촌은 큰누이의 서슬 퍼런 호통에 문화충격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삼촌을 위로하면서 말씀드렸습니다. “응, 미국에서는 그러는 거야 삼촌.”

하늘 영광은 몰라도 땅의 평화를 위해서는 세계 가장 강대국 미국의 교인들이 동전이라도 많이 모아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을 위해 보내야 하는 것이고 가정은 물론 교회에서 일방적으로 대접받는 사람 따로 없이 서로 힘들고 어려운 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는 식민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고통과 억압이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신 ‘예수의 평화’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