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미국 현충일(Memorial Day) 바로 전날이 주일인지라 애틀랜타 18년 목회 마지막 설교를 하고 떠나 중간에 자고 오후 늦게 후러싱에 도착해서 이삿짐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새벽기도 설교를 시작으로 후러싱제일교회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꼭 10년입니다.
돌이켜 볼 때 가장 교인들에게 죄송한 것은 당시 교인들의 마음 상태를 모르면서 내가 함부로 판단한 것입니다. 쌈박질이 나서 반토막이 난 교회를 회복시켜 달라고 감독이 부탁했으니 마치 내가 대단한 문제 해결사나 된 양 설교를 했습니다. 목회는 내가 역기능적인 교회(dysfunctional church)를 기능적인 교회로 전환시키는 전문가이니 내 방식대로 하면 회복과 부흥은 시간 문제라고 자신만만했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뜨겁게 환영하고 높이 치켜세우는 교인들은 좋은 교인들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교회가 필요한 것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서 예수 잘 믿고 예배 잘 드리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인정받는 과시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교인들이 원한 것은 따듯한 위로였는데 책망과 질책을 쉽게 했습니다. 부끄럽고 민망함이 큽니다.
정신 차릴 만한 때가 되니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교단분리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는 교회의 본질을 찾는 기회였고 교단분리 문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주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내가 뭔가 이루었다고 여겼던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목회 초심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빨리 지나간 10년은 이전에 없었습니다. 오자마자 창립 40주년 행사를 했는데 자고 깨 보니 이제 50주년입니다.
작년 연말 인생 마무리를 생각하게 하는 위기를 잠시 겪은 일이 있었습니다. 내 장례식 순서를 누가 맡을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정말 내 삶과 죽음을 잘 이야기 해줄 사람은 누구일지 생각해 보니 사람도 옥과 석을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목회도 시간의 한계를 맞이하면서 내가 집중해야 할 것들의 허와 실을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가려고 하던 길이 막히면서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길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교회력 본문 내용이 사도 바울 일행이 계획한 선교의 길을 예수의 영이 가로막는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나 교단 분리 문제도 사람들이 계획한 길을 예수의 영이 막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교단은 물론 교회들이 전반적으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ChatGPT에게 “이 시대 오늘의 교회가 마케도니아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물었더니 몇 가지 답을 주었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기 위해 사역의 방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는 교회가 되고 사람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 사회적, 문화적 필요에 복음으로 반응하라고 합니다. 교회 중심이 아닌 삶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교회가 ‘오는 곳’이 아니라 ‘가는 교회’가 되라고 도전합니다. 그리고 전도 방법, 설교 언어, 예배 방식 등 시대에 맞게 조정하기 위해 유연한 구조와 표현을 하라 하면서 이를 위해 교회가 말씀과 복음의 힘으로 변화를 이루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고 제시합니다. 질문을 던지면 답을 컴퓨터가 해주는 참 신기한 세상입니다.
지난 10년 사방팔방 길이 막히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위를 바라보도록 하셨고 생각하지 못했던 문을 많이 열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계획한 길은 막으셨지만 예상치 않았던 은혜와 깨달음의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