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세계적 전염병이 빨리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위드 코로나’(With Corona)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코로나가 빨리 해결되리라는 기대감으로 조급해 하거나 희망고문 당하지 말고 코로나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을 배우자는 것입니다. 타조가 위험을 느끼면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현실에 눈감으면 문제가 사라지리라 여기는 것입니다. ‘위드 코로나’라는 말은 코로나의 현실에서 두 눈 부릅뜨고 살자는 말인 것 같습니다.
오래 전 가까운 선배 목사님이 암을 이기려고 투병하실 때 “잘 싸우고 계시죠?”했더니 “아니 요즘 안 싸워. 이제 암과 친구하기로 했어. 아픔이 몰려오면 그래 네가 내게 예수님 십자가 아픔이 어떤지 알게 해주려 하는구나 고맙다고 하고 고통이 지나가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래”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사도바울이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하면서 바로 외친 말씀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였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아픔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만난다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사도 바울은 간증했습니다.
십여년 전에 어려운 부탁을 받았습니다. 뉴욕연회가 속한 동북부지역 총회가 다루어야 할 재판이 열리게 되었는데, 피고인이 되신 분이 제게 변호를 부탁한 것입니다. 변호자가 연합감리교 정회원 목사이어야 하니 제가 하고, 진짜 변호사가 조수로 돕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 했더니 그 분 말씀이 “여러 목사들의 의견을 모으니 한인 목사 가운데 가장 잘 싸우는 목사를 세워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김목사님에게 부탁하라고 하네요”하셨습니다. 몇 달 넘게 지속된 재판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격주로 애틀란타에서 필라델피아를 오가면서 어렵지만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선배 어른들에게 제가 가장 잘 싸우는 목사라는 평가를 받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옵니다.
몇 주 전에 했는데 다시 오는 화요일에 롱아일랜드 서지방과 동지방 연합으로 목회자 세미나 인도를 부탁 받았습니다. 제가 목회자 세미나에서 발표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떻게 역기능적인 교회를 순기능적인 교회로 전환시키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하다 보면 항상 들어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목사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방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비결이 뭐냐는 것입니다. 제 대답은 “교회에서 이겨야 할 분은 오직 주님 한 분 이십니다” 입니다. 지난 세월 목회하면서 내가 이기려 하고 이겼다 생각한 경우가 있었지만 교회의 주인되시는 주님이 승리자가 되지않고 목사이건 교인이 이겼던 경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우를 볼 수 없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몸과 마음과 영혼의 아픔이 깊어집니다. 그런데 사람 사는 어느 곳에나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더 큽니다. 요즘 목회스텝 모임마다 강조하는 것이 교회내에서도 더욱 연약하고 소외된 교인들과 그 가족들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소리 없는 사람들의 소리, 힘없는 사람들의 소망, 지극히 작은 자들과 죄인과 병자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씀합니다.
코로나 사태 더욱 주안에서의 돌봄과 사랑의 나눔이 커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