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국 방문에서 깨달은 것들이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자신이 처한 현장과 경험에 따라 세상을 판단하는 시각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을 절대화하면 안 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날 어린 시절 고향 교회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모두 나름대로 장하게 잘 살아온 친구들입니다. 정치 이야기를 하다 놀랐습니다. 저와 정반대의 생각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어쩌다 이리 만나니 다행이지, 자주 만나면 맨날 싸우겠다” 했더니 친구들이 요즘 한국에서는 회사에서 회식도 잘 안 하고 동창회도 조심한다고 했습니다. 한 친구는 대한민국 일류 대학 경영대학원장을 지낸 친구입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배우는 것이 참 많은데, 정치인 선호도는 저와 정반대였습니다. 그 전날에는 어린 시절 절친이었던 지난 정권의 장관을 지낸 친구를 만났는데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고, 고향 교회 친구들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들조차도 정치 견해가 극과 극이었습니다.
교계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교계 역시 극단적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합리적이고 발전적인 대화가 어려운 세상이라 어떤 일을 하든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최근 감리교 감독회장 선거가 있었는데, 젊은 목사들이 후보들이 모두 문제가 많아서 투표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하기에, 제가 “그러면 안 된다”고 훈수를 두었습니다. 모든 후보가 똑같다는 생각으로 투표를 하지 않으면, 나라 뿐만 아니라 교단도 더 나쁜 사람들이 권력을 잡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상을 조소적인 태도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일에 열심인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라든 교단이든,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뽑고 길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00주년을 맞이하여 초청된 세계 교회 대표들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조용히 있으려다가 이상적이지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선언은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 두 가지 실천 방안을 제시했더니, 선언문에 가장 먼저 채택되었습니다. 제가 조용히 있으려 했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평생 동네 교회에서 목회만 했기 때문에, 내 전문 분야가 아닌 경우에는 나서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비록 정보나 이론적으로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그것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망과 믿음만큼은 뒤지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습니다. 세계 교회 대표들이 내 조국의 평화를 위해 열심히 관심을 가지는 것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떠나기 전날 아침에 ‘한국교회의 돌봄협의회’를 추진하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노인, 장애인과 환자를 돌보는 통합 돌봄에 관한 법이 2026년에 통과될 예정인데, 이를 위해 한국 교회를 비롯한 종교와 사회단체들이 연합한다고 했습니다. 내용을 보니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목회하는 사람인데, 왜 필요한지 물었더니, 교계의 어른이신 이일영 장로님과 안재웅 목사님께서 저의 참여를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어른들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저는 그런 줄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협의회의 취지 첫 번째가 ‘돌봄을 통해 남북 간의 평화 기반 구축’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뉴욕 후러싱에서 목회하지만, 그런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다면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