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이라는 제목의 시 한편이 있습니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 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Hortense Vlou). 저는 그 시를 읽고 웃었습니다. 요즘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입니다. 외롭다는 것은 아니고, 내 살아온 걸음에 대해 돌이켜 보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인기였던 연속극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가 매일 퇴근 후 하루를 복기 한다고 했습니다. 복기에 대해 조훈현 기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복습이자 미래를 위한 설계다. 승 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길 준비를 만들어준다.”
아무래도 이제는 앞으로 나가기 보다 뒷걸음 질로 걷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하 는 일이 많아 집니다. 그런데 좋습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방향만이 아니라 머물러 보고 되돌아 보고 쉬어가는 길에서 깨닫는 예측 못한 은혜를 이제는 압니다.
성탄절을 조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2025년이 우리교회 한인회중 창립 50주년이 되기에 2020년부터 5년동안 후러싱제일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희년’을 생각하느라 책도 읽고 생각도 해야 해서 그렇습니다. 맨하탄 청년선교센터를 ‘Jubilee Ministry Center’라고 이름 했고, 기도원/농장을 ‘Jubilee Retreat Center’라 했습니다. 모두 ‘희년’(Jubilee)입니다. 그런데 기발한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 건진 것이 있다면 교회가 교회됨에 무관한 것들은 버리고 내려놓고 가야겠다 는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습니다.
다시 ‘사막’을 생각해 보자면, 팔레스타인 땅 작은 마을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교회에서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로운 뒷걸음질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것으로 가 득 차 있고, 갈 길이 바쁜 사람은 말 구유에 놓이신 아기 예수의 존재를 바라 볼 시간적 여유가 어렵 습니다. 얼마 전에도 아주 큰 어려움을 경험한 교인이 “목사님, 사업이 어려운 동안 가족들과 무척 가 까워졌습니다. 특별히 말씀 붙잡고 사는 행복을 알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람은 때로 뒷걸음 질도 해보고 미끄러져 보기도 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아야 하는 인생 경험 이 있어야 예수님을 보는 눈과 마음이 비로서 열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머물러 서있어야 하는 곳은 말구유에 놓이신 아기 예수일 것입니다. 그분을 보고 내 자신을 들여다 보는 삶의 정직한 발견이 필요합니다. 즉, 우리네 삶에서 잃어버린 예수를 다 시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목자들이 들었던 그 하늘의 소리를 듣고, 누추한 그 땅에 조용 히 아기 예수께서 나신 그 자리를 함께 따듯하게 지켜준 그 사람들의 마음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그 리고 그들이 보았던 그 것을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얼마전 유니온신학교 학장이 아기 예수와 그 부모를 시리아 난민 가족으로 표현했는데, 어 떤 사람들은 예수님 가정을 그렇게 표현한 것은 예수님 거룩성에 대한 모독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어 떤 이들은 복음의 역사성과 현재성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살 길을 찾아 헤매는 난민이나 국경을 넘어 미국에 오는 가난한 자들이 이 시대 예수의 가족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비움의 길’을 쓴 길동무는 “시내산계약의 법과 예언자들의 선포, 예수님의 말씀들에서 말하고 있는 거룩함이 란 신분과 지위, 빈부의 격차가 해결되는 ‘평등과 공의가 실현되는 삶’이다… 타락한 인간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짐승과 같은 약육강식의 상태를 극복하고, 이 세상에서 모두가 평화롭게 공평하게 삶 이다.”라고 했습니다.
요즘 뉴욕에서 이런 의미에서 거룩한 법들이 통과되고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 뉴욕에 ‘Green Light Law’가 통과되어 서류 미비자들도 운전면허증을 발부받게 되었습니다. 뉴욕주는 또한 서류 미비자 대학생들이 ‘In-State Tuition’(주민혜택 수업료)를 받을 수 있는 20개 주 가운데 하나입 니다. 차별없이 공부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인경건과 사회경건(거룩)이 하나되는 성경적 경건이 중심되는 감리교회입니다. 하늘의 거룩한 진리가 세상에 오신 사건이 ‘성육신’입니다. 마굿간 말구유에 놓이신 아기 예수가 성육신의 현존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땅에서 하나님 뜻이 이루 어지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4:18에서 예수님이 선포하신 ‘희년목회’가 그 것입니다. 억눌림과 억울함을 없애는 정의실현, 가난한 자에게 들 려지는 기쁜소식,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는 진리와 자유, 죽은 자 가 살아나는 생명의 세상을 이루는 ‘희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