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가득 성경구절을 물었지만 가슴에는 미움 가득해서 걸어 다니는 짓 그만해라.”(Stop walking around with a mouth full of scriptures and a heart full of hate) 얼마 전 시카고 Otis Moss 목사 설교 가운데 나온 내용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 하마스는 인질을 풀어주고 이스라엘은 가자 폭격을 중단하라는 내용이 담긴 중동 평화를 바라는 설교를 했더니 목사가 복음만 설교하지 않고 정치 설교 한다고 불만의 소리를 내는 교인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교회 담임목사가 연합감리교회 목사이고 후러싱제일교회가 연합감리교회인데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세팅이 되어있기에 하나님 나라가 뭔지 무관심하고 예수님 말씀의 내용이 뭔지 무지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지 알다 모를 일입니다.

한국을 방문하면 마주치게 되는 장면이 서울역 앞이나 명동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확성기에 소리지르면서 자기들이 굉장히 믿음 좋은 것처럼 하는 사람들과 광화문에서 애국한다고 예비군 옷 입고 모여서 군가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불쾌감이 가득한 사람들이 전도한다고 하고 나라를 바꾸겠다고 하는 것 딱한 노릇입니다. 그런가 하면 며칠 전에 제 페북에 ‘전국에 계신 목사님들!!!”에게 보내는 메세지가 올라왔는데 ‘목사는 뭣이 중헌디… ‘윤석열 퇴진’ 외치는 가난한 민중들을 보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사랑 교회에서만 설교하지 마시고 거리로 나오셔서 가난한 양들 굽어 살피소서. 저항의 선봉이 되어 주소서”라는 내용입니다. 자기 정치 소신이 현 정권 퇴진이면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이니 광화문에서 하건 시청 앞에서 하건 자유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째야 한다 목사 설교가 저래야 한다 일방적 그리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 무례한 짓입니다. 왠지 정의로운 세상 만들겠다고 하지만 서울역 전도하는 사람들이나 광화문 애국한다는 사람들과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들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대화가 불가능한 일방통행이 그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자유하고 자연스럽고 감사와 기쁨이 넘쳐 흘러야 하는데 보채고 복잡하고 자기 의에 가득 차서 남에게 부담을 주는 일에 바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고 그 사랑으로 같이 사는 사람들 귀하게 여길 줄 모르면서 세상을 바꾼다고 난리치고 교회가 이래야 저래야 한다 시끄러운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된 유대민족의 주권을 회복하는 길이 성경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생활 전반에 걸쳐 실천하도록 수백 개 만들어서 철저하게 지키도록 했는데 뜻은 좋았지만, 이것이 사람을 숨막히게 만들고 죄의식에 빠뜨리는 무거운 종교적 짐이 되게 했습니다. 그러니 로마제국은 정치와 경제 침략으로 유대민족을 짓눌렀고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무거운 짐으로 짓누르니 사람들이 살기가 피곤하고 무척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성경 전체 가르침의 핵심이 뭐냐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마음과 목숨 그리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큰 첫째 계명이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가장 잘 믿는 것처럼 난리 치면서 사람 잡는 일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너 자신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옛날 장일순 선생님이 민주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잘났다고 여기지 말고 겸손하게 섬기는 것부터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장에서 도둑질한 사람 찾아서 훔친 사람에게 돈 돌려주게 한 후 국밥을 사주면서 “미안하네. 자네 오늘 장사 망치게 해서” 하셨던 분입니다. 가톨릭 교인인데 교황이 한국 방문했을 때 교황을 만나도록 주선한 교황청의 초대를 정중히 거절하시면서 그 시간에 원주 시장바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과 막걸리 한잔 하겠다 하셨습니다. 교황을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정말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상이 분노하고 미워하는 일에 급합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교단도 그토록 고상하고 아름다운 말이 풍성했었는데 요즘은 야박하고 잔인한 말들이 난무합니다. 뉴욕 한인사회도 교계도 분열의 골이 깊다고 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며칠 전 모임을 하면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실을 친구 삼으라”(Making friends with actionable facts)는 말을 했습니다. 사실이 아닌 말들을 함부로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실이라고 해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것 집착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더 테레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입에 성경구절 많이 담고 아무리 종교적인 고상한 말 많이 한다 해도 마음 속에는 미움과 불평불만 가득한 인생 살면 예수 제대로 믿는 것 아닙니다. 정작 한 사람 한 번도 사랑하지 못한 인생 살았으면 주님 앞에 설 때 많이 부끄러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