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점심에 JFON(Justice For Our Neighbors) 자원봉사자들의 수고에 감사하는 식사모임이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뉴욕 여러 지역에서 서류 미비자들과 이민자들의 법적인 문제를 도와주는 선교 단체입니다. 후러싱제일교회는 3년전 부터 JFON 상담실을 매 월요일 열고 선교비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어제 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여러분의 자원봉사가 귀하고 감사합니다.”라고 환영인사를 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교회력 설교를 같이 준비하는 목사님이 “원수를 사랑하라” 하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비가 메마른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번 달 초에 있었던 텍사스 게인즈빌에 사는 11살 소녀 조슬린 카란자의 죽음을 언급했습니다. 조슬린은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로 부터 서류미비자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아이들이 너희 가정 이민 당국에 신고하면 너희 부모님 모두 추방되고 너는 혼자 남을 것이라고 협박하고 괴롭혔다고 합니다. 어린 아이가 왕따를 당하며 두려움 가운데 버텼는데, 학교에서는 아이가 힘들어서 상담을 받고 있었다는 것 조차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너무 슬픈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위로는 나라를 책임지는 대통령으로 시작하여 아래로는 언론이나 자기 부모들이 하는 말을 들은 어린아이들이 학교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살고 있는 친구를 협박하고 괴롭힌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나그네를 환대하고 서로에게 자비로와야 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잔인하고 못된 언행을 따라 하는 악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화가 많이 나 있고 적대심이 많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문제에 교회가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습니다. 내편은 하나님편이고 반대편은 사탄 마귀로 편을 갈라 적과 원수를 만드는 선동에 앞장서는 목사들과 유투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논리와 합리적으로 깊이 생각하는 것이 어려우니 선동에 쉽게 넘어갑니다.
얼마전 “교회 못다니겠다…한국은 창피해서, 미국은 무서워서”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국은 극우 목사들의 정치적 망언 등으로 합리적 기독교인들이 설자리를 잃고 교회를 떠나고 있고, 미국은 트럼프 정부의 이민 정책으로 서류 미비자들이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M뉴스엔조이) 그런데 진정 이런 현실에 피해자들은 대부분 약자와 소수자들입니다. 그리고 망가지는 것은 교회입니다.
아무래도 사랑보다는 미움과 증오가 쉽고 편합니다. 내 자신의 내적인 성찰보다는 남의 잘못을 들쳐내는 것이 재미날 것입니다.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보다는 권력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듣기 좋은 말하는 것이 이익일 것입니다.
오래전인데 성경공부 시간에 집요하게 “목사님은 왜 설교 시간에 그런 사람들에 대해 확실하게 죄라고 하지 않으시나요?” 항의조로 질문을 하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에 대해 왜 그렇게 증오심이 큰가요?”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성경에서 죽여야 마땅할 죄라고 했으니까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다른 죽여야 마땅하다는 죄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인간들의 행위의 죄보다 오히려 바리새인들의 무자비한 마음의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왜 남의 죄에 대해 그리 관심이 많으신지요?”라고 했습니다. 결국 교회를 시끄럽게 하다가 떠났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두렵게 하고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나라의 정책은 물론이고 함부로 성경을 인용하면서 사람을 함부로 잡는 어떤 언행도 용납되면 안됩니다. 예수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나도 하나님의 원수였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세상, 천국이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종교라는 기독교가 때로 예수님과 너무 다른 모습이 많은 것 안타깝습니다. 오래전 달라이 라마가 했던 “사랑하지 못하겠으면 미워하지나 마세요.”라는 말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