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 끝난 세계교회협의회 11차 총회 폐회 기도회 주제가 “From hostility to hospitality” (적대에서 환대로)였습니다. “그리스도가 사랑하심 같이 담대하게 사랑함은 피할 수 없는 소명(imperative)이지 옵션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차별이 없고 모두가 공정하게 혜택을 입으며 협력과 합심이 이루어질 때 그리스도의 담대한 사랑이 우리에게 보다 가까운 현실이 될 것입니다.”라는 메세지가 나누어졌습니다.

그저께 올해 100세가 되시는 지창보 교수님이 쓰신 ‘고독과 자유: 남과 북을 사랑한 지창보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지교수님 삶을 보여주는 사진을 영상으로 보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옛 어른들이 계셔 감회가 깊었습니다. 모두 일찍 통일운동에 앞장섰다가 어려움을 많이 당했고 오래전 이 세상을 떠난 분들입니다. 제목 ‘고독과 자유’가 가슴 깊게 다가왔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지교수님이 인사 말씀을 하시는데 “늙고 못난 나에 대해 너무 좋은 말을 많이 해주시니 부끄러워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나는 못나고 부끄러운 사람인데 이렇게 환대하고 사랑해 주시니 감사합니다.”하십니다. 평생 홀로 사셨고 가까이 하면 문제가 되는 기피인물로 찍힌 인생 사셨는데, 그 어른의 말씀과 모습에는 보통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편안함과 자유가 있었습니다. 사회학교수로 평화와 통일운동가로, 동양화 화가로 대단한 인생을 사셨으면서 겸손함과 따듯함, 인간 아름다움의 향기가 넘쳤습니다.

논어에 ‘궁이부쟁 군이부당’이란 말이 나옵니다. 군자는 몸가짐을 당당하게 하되 다투지 아니하며, 뭇사람과 화목하되 파당(派黨)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뒤에 숨어서 비겁한 짓이나 야비한 노릇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화이부동’, 대인은 조화롭게 잘 화합하지만 쉽게 동화되지 않고 소인은 동화되지만 화합을 이루지 못한다 했습니다. 미국사회 문제를 지적하면서 로버트 블라이(Robert Bly)는 “어른은 없고 아이들끼리 싸우는 사회”(The Sibling Society)에서 “곁눈질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 위를 바라볼 줄 아는 어른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어른을 말합니다.

“정의와 평화”, “화합과 일치”를 말하는 이번 세계교회협의회 기사를 보면서 참 멋있다 좋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런 것들이 우리와 같은 풀뿌리(grassroot) 동네 교회 까지 연결되기 어려운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저는 이상적이고 결의와 선언들을 잘하는 모임 크게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임에 가보면 개신교 목사들이 카톨릭 사제 흉내내는 종교적 장식들을 주렁주렁 달고 왔다갔다 하는 것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평신도 운동으로 시작된 감리교 정신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 연회도 이런저런 모임에 목사들은 하얀 가운 뒤집어 쓰고 예배 참석하라고 하는데 왜 옷차림으로 평신도와 구별하려는 그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평신도들은 잘 오지 않고 목사들끼리 가운 입고 모여 있는 모임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땅에 발을 디디고 목회하셨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먹고 마셨습니다. 지창보 교수님이 자기 스스로를 못난 사람이라고 사람들의 칭찬받기를 부끄러워하는 겸허한 인간미가 사람에게 감동이 됩니다. 우리가 땅으로 더 내려와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오래전에 제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당신네 목사들은 그렇게 자기들이 설교하면 세상이 달라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사람 하나 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정말 변화가 어려운 현장은 내 가정이고 교회이고 내가 살아가는 동네입니다. 무엇보다 나 자신입니다.

연합감리교회도 이제는 부끄러운 민낯이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세상 이상적이고 진취적인 선언과 결의 잘하는 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성애자 목사안수 문제로 선이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못난 모습들이 너무 많이 드러납니다. 지난 세월 보수가 못나게 되면 무식하고 무지해 지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요즘은 진보주의자들이 기회주의적인 권력 욕심을 드러내고 권력에 추종하는 소인들의 발이 무척이나 빠른 것을 봅니다.

교단의 싸움이 이제는 교회로 내려왔습니다. 오늘 교단현실을 아는데 필요한 인포메이션을 나누는 타운 홀 미팅을 합니다. 동성애자 목사 안수 문제 우리 교회 교인들이 그리 큰 관심가지는 사안도 아니고, 만들어 놓은 문제는 더욱 아닌데 이 사안에 대해 결정을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결정을 한다고 해도 이러나 저러나 절대로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담담히 수용할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시고/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둘 중 어떤 경우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도 주옵소서… 여러 어려움들을 평강으로 가는 오솔길로 여기게 하시고/죄 많은 세상, 내가 원하는 것만 받아들이지 말고 주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있는 그대로 끌어안게 하옵소서… (라인홀드 니버 Reinhold Niebuhr 1892-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