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당신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소유할 것 없다”(Smile. You don’t own all the problems in the world)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옛날에 최불암씨 나오는 무슨 프로그램인데 유명한 대사가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지구를 지킬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젊어서 세상 천하 모든 문제를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심각하게 살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그리고 교단분리 문제로 진통을 겪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결국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그것만 책임질 수 있다는 것과 그리고 내려놓고 버리고 떠나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저는 오랜 세월 짝사랑한 것이 많습니다. 연합감리교회라는 교단에 대한 자부심과 내 나름대로 감당하려 하는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허망한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지켜내야 한다고 여겼던 공동체의 관심사들이 많았습니다. 허탈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교단의 문제로 인해 오랜 세월 함께했던 관계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전쟁도 아닌데 전쟁의 문화가 가깝게 다가옵니다. 어려울수록 서로 돕고 잘해야 한다고 여기는데 좋은 뜻도 왜곡되어 이야기되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한인들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가 한인들이 있는 지역으로 교회를 옮겨 교회를 부흥시키고 싶다고 하기에 도우려고 했습니다. 교인들의 마음이 모아져서 그러기로 했다는 소식을 몇 달 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연회 리더십의 허락을 받으려고 했더니 후러싱제일교회가 도와주면 나중에 교단을 탈퇴할 것이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 비슷하게도 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는 일인데 그렇게 말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마음 아파하는 젊은 목사를 보아야 했습니다. 세상의 음모론이라는 것이 이렇게 교회에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후러싱제일교회는 코로나 어려울 때 우리도 어렵지만 분담금 100%만이 아니라 선교 예산을 10배 초과해서 어려운 교회들과 선교지를 도왔습니다. 교단이 시끄러울 때 오히려 연합감리교 세계선교국 한인 선교사 10여 명 모두 조금씩 지원을 했습니다. 우리가 귀하게 여긴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올해부터 한인선교사들만이 아니라 폭넓게 지원을 준비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도 정말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오늘 교회력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외칩니다. 지금 이 시대 “때가 찾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것이 아닌 사람들이 세우고 자랑하던 바벨탑이 무너지는 때입니다. ‘세계는 나의 교구’ 웨슬리 신앙 운동의 정신은 사라지고 조직의 집단이기주의와 권력 지향적 기회주의자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는 때일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 우선이 되는 세속화의 때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와 ‘생명 얻는 회개’를 제시합니다. 회개하면 살 수 있다는 말씀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쉽게 강퍅해지는 때에 삽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 또한 그는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 12:17)고 합니다. Kent M. Keith가 쓴 ‘Anyway’(그럼에도 불구하고)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라고 비난 받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만들어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나누어 주어라.”
회복과 부흥이 절실합니다. 그런데 회개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유대 랍비의 가르침 가운데 “회개하는 사람이 서 있는 땅은 거룩한 땅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단이나 교회나 세상 모든 일에 남에게만 문제를 돌리지 말고 나 자신은 어떤 모습인지 성찰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오래전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어느 기자가 “빌 클린턴이 간음의 죄를 저질렀는데 당신은 그가 진정한 크리스찬이라고 인정하느냐?”고 질문했을 때 지미 카터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볼 때 빌 클린턴이 저지른 죄는 참 잘못된 죄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드러난 죄는 빌 클린턴이 나보다 훨씬 많을 것이나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은 죄는 어쩌면 내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나는 빌 클린턴을 정죄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으면 그것은 하나님과 그와의 일이다.”
오래전 엘 고어와 조지 부시 대통령 선거가 극소한 차이로 끝나 결국 연방대법원에서 판결을 내렸습니다. 판결 후 그 판결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존중한다는 선언과 함께 자신의 패배 연설에서 엘 고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 새롭게 당선된 조지 부시를 위해 함께 일할 때입니다…. 이제 제게 남은 것은 떠나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떠날 때는 떠나고 끝낼 때는 끝낼 수 있는 지도자들은 훌륭한 지도자들입니다. 자기 자신들의 명예나 이권을 위해서 끝까지 고집 피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소의를 희생할 줄 아는 지도자들을 가진 나라는 축복 받은 나라입니다. 교회도 그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사랑하고 세우는 일에 최선 다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