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 시카고에서 대학 목회를 할 때 주중에는 여섯 대학 캠퍼스를 돌면서 목회를 했고 주일에는 오전에 시카고 남쪽 시카고대학에서 유학생 중심으로 개척한 교회와 오후에는 북쪽에서 이민 1.5세 중심으로 개척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가 넘쳤는지 교단 일은 물론 평화통일에 관계되는 일에도 열심히 종횡무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철우 목사님과 박이섭 목사님이 오셔서 참 좋은 목사님이 계신데 목회가 계속 어려우니 ‘기독교사회관’을 만들어서 맡겨보고 싶다고 ‘대학목회’ 사무실 하나를 무료로 쓰게 해달라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20대 중반 목회 초년생이고 두 목사님은 당시에 한인연합감리교회를 이끄시던 어른들이셨으니 감히 싫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때 목회가 어려워 친구들 도움으로 명함의 이름은 거창하지만 거의 하는 일이 없으셨던 그 목사님과의 만남이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저보다 20살은 연세가 많으신 어른인데 제가 아침에 출근하면 차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김목사님, 내가 일 많이 하는 김목사님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 생각해 보니 바쁜 하루 시작하기에 앞서 몸에 좋은 차 한잔 대접하는 것 같으니 거절하지 말아요”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과일이나 채소를 자르거나 깨뜨리지 않고 통째로 차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바쁠수록 천천히 마셔야 합니다”하셨고 태권도가 7단이셨는데 “내가 젊어서는 축구장도 연습하기에 좁다고 여겼어요 그런데 지금은 앉아있는 자리도 넓어요” 하셨습니다.
어느 날 아침 차를 마시고 일어나려 하는데 목사님이 잠시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셨습니다. 따님이 결혼을 한다고 하면서 목회를 잘 못해 손님들 많이 초대하는 성대한 결혼식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무능력한 아버지를 용서해 달라고 하셨다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따님이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아빠는 내게 언제나 세상 최고의 선물을 주셨어요. 난 어려서부터 잘 때 아빠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 것 다 기억해요.” 언제나 딸이 자는 것 확인하고는 머리에 손을 살짝 얹고 작은 소리로 “하나님, 제가 무능력한 아비인 것 잘 아시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 뿐이니 하나님이 제 딸 아버지가 되셔서 축복하시고 지켜 주세요” 기도하셨다 합니다.
당시 저는 바쁜 목회를 한답시고 목사님 식사 한번 대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한참 어린 후배 목사를 위해 매일 정성으로 차를 끓여 주셨고 따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그 목사님에 대한 감사가 큽니다.
5월 가정의 달 언제나 후회와 회개가 많습니다. 부모님 생각하면 ‘불효자는 웁니다’가 제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아내나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시간 투자를 못했습니다. 언제나 이유는 목회 바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교인들에게도 머물러 차 한잔 제대로 대접하는 자상한 목사가 아니었습니다.
김도향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어느 날 난 낙엽 지는 소리에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죠. 그냥 덧 없이 흘려버린 그런 세월을 느낀거죠…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바보처럼 바보처럼/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흘려버린 세월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을까.”
흘려버린 세월은 어쩔 수 없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오늘과 내일은 후회가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채우기 위해서 식구들과 밥 같이 먹는 시간 귀하게 여기고 나와 커피나 차 한잔 마시는 사람을 감사하며 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