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성도추모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먼저 천국에 간 사랑하는 이들을 천상의 성도라 하고 땅의 사람들은 지상의 성도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산자와 죽은자 모두의 주님이 되시고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다 떠난 자 기뻐하신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땅의 성도와 하늘의 성도가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이 사람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 장자는 삶과 죽음에 대해 “얻음은 그 때를 만난 것이요, 잃음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세상에 오면 편안히 그 때에 머물고, 떠날 때 또 그런 순리에 몸을 맡긴다면, 슬픔과 기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물이 흐르듯 흘러보내고 받아들이는 자유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할머니 어머니 모두 20대에 홀로 되었는데 어린 누이마저 20대에 그리되는 것을 보고 출가했던 석용산이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달으려 몸부림치다 이렇게 썼습니다. “풀지 못해 안달하던 매듭들이 그대로 삶을 삶 되게 하는 아름다운 장신구임을 알았을 때, 스며드는 기쁨! 사랑하라 사랑하라… ” 그리고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모두가 그리운 사람들이야!…부는 바람 형제의 숨결이듯, 밟는 땅은 아버지 가슴이란다. 흐르는 물 어머니 젖줄이듯 맑은 하늘은 누이 동공이란다”라고 썼습니다. 불교적 깨우침으로 보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속에 담겨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가르침은 보다 정직하게 삶의 아픔을 하나님께 질문 던집니다. 지난 토요일 피츠버그Tree of Life(생명의 나무) 유대인 회당에서 백인우월주의자에 의해 교인 11명을 잃은 유대랍비 Myers가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이 CNN에 나왔습니다. “하나님! 시편 23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라’하셨지만 지금 하나님은 내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어간 우리 교인들을 우리에게 돌려주실 수 없잖아요.” 그러면서 그는 “나는 지금 믿음만 있으면 죽음과 사망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 하고 부족함 없이 선한 목자되시는 하나님 옆에 평화롭게 누워있게 된다는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성도들에게 설명해야 할지 아파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유대교 신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교인들이 죽어간 그 회당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기에 오는 토요일 다시 하나님 거룩한 이름을 부르고 예배 드리겠노라 선언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화요일 아침 우리교회 ‘약속의 땅’에서 저는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내야 하는 부모의 오열속에 함께 하시는 주님의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수요일에는 장수의 축복을 누리고 떠나신 권사님을 흙으로 돌려보내는 마지막 예배에서 어린 손주들이 소리내지 않고 슬피우는 눈물을 보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느꼈습니다. 내가 떠날 때 나를 기억하고 사랑하며 슬퍼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그 자체가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오늘 저녁 제 장모님 천국환송예배가 있습니다. 육신의 정으로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저와 제 아내는 슬픈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장모님은 항상 50여년 전 천국가신 남편을 그리워하면서 사셨습니다. 노년에도 사람들이 남편 이야기를 하면 항상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되시고는 하셨습니다. 장례를 위해 어떤 찬송가를 부를지, 누가 추모를 하면 좋을지도 이야기를 해놓으셨습니다. 평생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믿음으로 이겨내셨고 단 한번도 하나님 원망을 하거나 삶을 불평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가대에서 장례식때 무슨 찬송이 좋겠냐고 해서 하나님 감사와 기쁨, 영광의 노래를 불러달라 했습니다. 정말 삶도 죽음도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성도추모주일예배가 오직 하나님 기쁨과 영광되고 천국소망과 부활승리를 결단하는 시간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