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제 어린시절 고향교회 선배가 페루에서 브라질까지 여행을 하면서 ‘사막 투어’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롱아이랜드 죤스 비치 해변가 모래 사진을 보내줬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그 형님은 고려대학을 다녔는데, 73년도 미국 이민간다고하니 김포공항에 배웅하러 땀 흘리며 뛰어와 “정호야 조국의 흙이다”하면서 흙이 담긴 종지를 제게 선물로 줬었습니다. 한달 전에는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을 간 시카고 이민 초기 친구들이 기린과 사자가 담긴 사진을 보냈습니다. 일찍들 은퇴하고 놀러 다니는데 저를 샘 나게 하려고 보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손자와 후러싱 동물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줬습니다. 몇년 전에 목사들이 웨슬리 영성순례를 영국으로 가서 웨슬리 생가 사진을 보냈기에 저는 제방에 있는 웨슬리가 말을 타고 있는 ‘순례설교자’ 사진을 보냈습니다. 마틴 루터 종교개혁 기념으로 독일 여행을 간 팀이 사진을 보냈을 때는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정문에 붙인 종교개혁 95개 반박문을 보냈었습니다. 성지순례는 몇년 전 워싱턴 성경박물관에 가서 큰 이상한 안경을 쓰고 보는 가상 성지순례를 30분 했던 것으로 아직까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여행을 아직 못했습니다.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누가 못가게 해서도 아닙니다. 그냥 못갔습니다. 앞으로 시간내서 갈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저는 그냥 동네에서 보는 것도 재미나고 별것 아닌 것 같은 것으로도 행복하기를 쉽게 하기 때문입니다. 동네 동물원에 가서 원숭이를 보고 팽귄을 보면 아프리카도 북극도 다녀온 것 같이 재미납니다.
코로나로 인해 예배당 문 닫혔다가 다시 대면으로 새벽기도를 시작하면서 몸은 피곤하지만 통성기도 후 무릎 꿇고 십자가 앞에서 기도할 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은혜의 행복 세상이 줄 수 없고 뺏을 수 없는 축복입니다. 저는 따로 휴일이 없습니다. 안식하는 것 잘 못한다고 비난을 받지만 사실 사무실에 나와 있으면 천하 마음 편합니다. 겨울 바람이 차가운 어제 권사님 한분이 군고구마를 가져다 주셨는데 세상 최고 맛있는 고구마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장로님께서 식사 대접하신다고 해서 연어장 덮밥 먹었는데 입에서 녹더군요. 저는 비싼 음식을 선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평상시에는 돼지국밥 먹고, 돈이 좀 있는 사람이 사주면 5불 더 비싼 것 먹고 그럽니다. 뭘 먹어도 맛있어서 행복합니다. 제가 이렇게 사는 이유는 행복하게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목회 힘들다 생각하면 힘듭니다. 그러나 저는 감사와 기쁨, 하나님 은혜의 선물로 여기며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오늘 교회력 복음서 본문에 보면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제자를 보내 예수께 질문합니다. 당신이 메시아냐?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냐? 예수님 답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치유와 구원의 역사를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사는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천국과 하나님 나라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우리 교회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 함께 계심을 보고 믿는 성도들에게 임하는 지금 여기에서 치유, 구원, 천국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 계심으로 일어나는 역사를 보면 복 받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고 실족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마태 11:17)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목회하면서 예수님이 부는 피리에 나름대로 춤을 추는 교인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우크라이나 겨울맞이 특별헌금 이야기를 드렸더니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뉴저지에 계신 분이 적지 않은 선교헌금을 보내오셨습니다. 선교에 필요한 것을 설교에 말씀드리면 꼭 기억하고 헌금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교회가 오늘 가능한 것은 보이게 보이지 않게 교회를 사랑해서 헌신하는 분들과 넉넉하게 헌금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목회라는 것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서 이들과 함께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사는 그 자체가 거룩한 일이며 축복입니다. 아이들은 교회에서 예수님 사랑안에서 자라고 어른들은 나이 들어 늙어가는 것이고 우리 모두는 때가 이르면 천국 여행 떠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부모보다 먼저 떠난 젊은이 장례예배를 집례했습니다. 거의 한달 전에 같은 나이의 젊은이 장례를 그 자리에서 했습니다. “목사님 난 이제 어떻게 살아요?” 사랑하는 아들을 보낸 어머니 두 분이 제게 던진 질문이 같았습니다. 무슨 정답이 있고 무슨 대단한 말로 위로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드린 말씀은 “이제 더욱 하나님 의지하고 기도하셔야죠”였습니다. 그런 어려운 장례에 참석하는 교인들이 항상 고맙습니다. 성가대 참 감사합니다. 답도 없고 위로도 어려워도 그냥 인생 여정 아프고 슬플 때 함께해주는 것이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같이 있는 것 뿐입니다. 믿기 어려워도 하나님 말씀 붙잡을 뿐입니다.
영국 속담에 “가장 불행한 인간은 지금 여기 이들이 아닌 다른 것을 기대하는 자들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하나님 사랑과 은혜 구원의 역사를 보고 믿는 자는 행복하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합니다.